
전등사를 창건한 것으로 알려진 아도화상(阿道和尙)은 위나라 사신이었던 아굴마와 고구려 여인 고도녕 사이에서 태어났다. 5세에 출가한 뒤 16세에 위나라 현창화상(玄彰和尙) 밑에서 공부한 뒤 19세에 귀국하였다. 신라로 가서 불교를 홍포하기 위해 노력하였으나 불교를 꺼리는 사람들에 의해 목숨까지 위태로운 지경에 이르렀다. 미추왕 3년(264년)에 성국공주(成國公主)의 병을 치료한 뒤 왕의 허락으로 흥륜사(興輪寺)를 창건한 뒤 불법을 펼쳤다. 아도화상을 숨겨주었던 모례의 누이가 출가하여 절을 지어 영흥사(永興寺)라 하였다. 아도화상에 대해서는 기록에 따라 다른데 서축사람이라고도 하고 삼국사기 눌지왕 때 묵호자와 같은 사람으로 보는 경우도 있다. 아도화상과 관계가 깊은 절은 경북 선산의 도리사로 눌지왕 2년(418년)때 개창했다고 한다. 또한, 도리사를 개창한 후 황악산을 바라보며 손가락으로 절터를 가리키어 지은 절이 지금의 직지사란 이야기도 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불교에도 깊은 인연이 있어 각황사(지금의 조계사) 학생회에 참여하여 당시 교학의 으뜸이었던 박한영, 한용운 스님 등에게 불교의 교의와 선지를 익혔다. 그리하여 김한기는 서양 철학은 물론 불교와 유교까지 통달하여 친구들로부터 ‘걸어다니는 철학사전’이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였다. 그는 보성고보를 졸업할 무렵 “이제 내가 더 배워야 할 것은 부처님 경전 밖에 없다.”고 선언할 만큼 불교에 깊이 심취했다. 하지만 그는 출가를 하는 대신 고시 공부에 전념해 공직자가 되었다. 그러면서도 속인 신분으로 파계사 성전암에서 참선 수행을 마치고 문득 한 소식을 전했다.
내가 청산과 백운 사이에 이르니 그림자와 실체도 없고 모양까지 없도다.
이 게송에 탄복한 제산 대선사는 그에게 ‘득장(得杖)’이라는 호를 내렸고, 쌍계사 조실이었던 설석우 대조사는 ‘백룡(白龍)’이라는 거사호를 내렸다. 뿐만 아니라 김적음 대선사와 박금봉 대선사 등도 스님의 선기를 크게 인정했다.





그의 직위는 계속 올라 마흔일곱 살이 되던 1950년에는 ‘서울전매서장’이라는 직책을 맡게 되었다. 6·25 전쟁이 터졌을 때 그는 미처 피난을 가지 못하고 서울에 남아 있었다. 하지만 9·28 수복 후에는 ‘인민군에게 부역했다’는 엉뚱한 누명을 쓰고 헌병대로 끌려가 한 달 동안 혹독한 고문을 받았다. 결국 철저한 조사 끝에 무혐의로 석방되기는 했으나 집에 돌아와 보니 외동딸이 스물다섯 살의 나이로 죽은 뒤였다. 외동딸 혜숙은 아버지가 죄 없이 헌병대로 끌려가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아 병을 얻고 끝내 이승을 떠났던 것이다. 속세의 삶에 더 이상 미련이 없었던 그는 제산 스님을 은사로 득도를 했다. 출가하기엔 너무도 늦은 나이, 늦깎이 중의 늦깎이로 출가한 그는 상주 갑상사 등에서 피나는 정진을 거듭한다. 하지만 서운 스님에게는 많은 일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불교정화운동이 일어났으니 속히 상경하시오.”
동산·효봉 큰스님이 서운 스님을 불러올려 종단의 중책을 맡긴 것이다. 마흔일곱 살까지 국가의 최고 행정을 맡았던 서운 스님인지라 불교 정화운동의 회오리를 누구보다 능숙하게 처리할 수 있었다. 그 때문에 서운 스님은 늦깎이임에도 불구하고 총무원장을 세 번이나 역임했고, 동국학원 이사장을 두 번이나 맡으며 한국 불교를 크게 중흥시켰다.
1983년부터 스님은 전등사에 주석하시면서 참선 수행에만 전념한다. 그리고 1995년 11월 15일 여느 날처럼 자리에서 일어나 먼 산을 한 번 쳐다보고는 자리에 누우신 스님이 제자들에게 운을 뗐다. “나는 오늘 갈 것이다. 오고 감이 없는 곳에서 새로운 삶을 살 것이다. 내가 죽거든 내 몸에서 사리를 수습하지 말 것이며 다비식도 조촐하게 해라. 낡은 몸을 태우는 일에 돈을 낭비하는 것은 불조를 욕되게 하는 짓이다.” 이렇게 당부한 서운 스님은 다음과 같은 열반송을 남겼다.
공교롭게도 스님은 출가일과 득도일, 열반일이 똑같았다. 스님은 세수 아흔셋, 법랍 마흔다섯 해로 열반에 드셨다.
1983년부터 스님은 전등사에 주석하시면서 참선 수행에만 전념한다. 그리고 1995년 11월 15일 여느 날처럼 자리에서 일어나 먼 산을 한 번 쳐다보고는 자리에 누우신 스님이 제자들에게 운을 뗐다. “나는 오늘 갈 것이다. 오고 감이 없는 곳에서 새로운 삶을 살 것이다. 내가 죽거든 내 몸에서 사리를 수습하지 말 것이며 다비식도 조촐하게 해라. 낡은 몸을 태우는 일에 돈을 낭비하는 것은 불조를 욕되게 하는 짓이다.” 이렇게 당부한 서운 스님은 다음과 같은 열반송을 남겼다.
비록 형상 없지만 두드리면 곧 신령스러움이 있고 삼독으로 화탕지옥에서 평생을 지냈다.
이제 몸 버리고 고향에 돌아가니 차가운 달, 빈 산이 진리의 몸이로다.
이제 몸 버리고 고향에 돌아가니 차가운 달, 빈 산이 진리의 몸이로다.
공교롭게도 스님은 출가일과 득도일, 열반일이 똑같았다. 스님은 세수 아흔셋, 법랍 마흔다섯 해로 열반에 드셨다.
큰스님 법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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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당법어(1) |
上堂云호대 三世諸佛과 歷代祖師와 十二部經이 在人性中하야 本自具有어늘 能悟自心하면 卽時豁然이니라. 頓悟自心이 本來淸淨하야 元無煩惱며 無漏智性이 本自具足하야 此心이 卽佛이니라 六祖云호대 自性을 迷하면 佛卽衆生이요 自性을 悟하면 衆生이 卽佛이다. 법상에 올라 말씀하시되, 삼세의 모든 부처님과 역대 조사와 십이부경이 모두 사람의 성품 가운데 있어서 본래 구족해 있거늘 이 마음을 스스로 깨치면 즉시 걸림이 없이 자유스러울 것이니라. 마음이 본래 청정해서 본래 번뇌도 없으며 무루 지혜가 본래 구족해서 이 마음이 곧 부처임을 깨달아야 한다. 육조스님이 이르되, “자성을 迷하면 부처가 곧 중생이요, 자성을 깨달으면 중생이 곧 부처이다.” |
상당법어(2) |
上堂云호대 山下大地와 萬象森羅가 皆有佛性하야 悉有成佛이라. 因甚하야 學人은 不成佛이닛고. 此云一句를 打成一片하야 勝勝任運하면 做一箇無事出格眞道人也니라. 不疑不疑할지어다. 道本無形像 不在內外中 佛眼可不見 凡愚豈可知 법상에 올라 말씀하시되, 산하대지와 삼라만상이 다 불성을 갖추어 있어서 다 부처를 이룸이라. 무슨 일로 학인은 부처를 이루지 못합니까? 이르되, 이 一句를 참구하여 그 뜻을 이루어 걸림없이 자유스러워지면 아무 일도 없는 참다운 도인을 이룰 것이니라. 의심하지 말고 의심하지 말지어다. 도는 본래 형상이 없고 안이나 밖 그리고 중간에도 있지 않다. 부처의 눈으로 가히 볼 수 없나니 범부들의 어리석음으로 어찌 알 수 있으리오. |
상당법어(3) |
上堂云호대 石女가 忽生兒하면 木人이 暗點頭하고 崑崙山이 起坐하야 騎鐵馬하면 舜若가 着金鞭이라. 兩個泥牛가 相鬪하야 哮吼하며 走入海니 盡未來際하야 尋着해도 料掉無消息이다. 大衆은 당지하라. 此是 父母未生前의 末後一句니라. 법상에 올라 말씀하시되, 石女가 갑자기 아이를 낳으면 木人이 가만히 머리를 끄덕이고 저 곤륜산이 자리에서 일어나 쇠말을 타니 허공이 채찍으로 친다. 두 마리 진흙소가 서로 다투다가 소리지르며 바다로 뛰어들어가니 미래제가 다하도록 찾아도 소식이 없다. 대중은 마땅히 알아라. 이것이 부모가 태어나기 전의 최후의 一句니라. |
상당법어(4) |
上堂云호대 一念不生하면 皆是體現이라. 靈識獨露하야 不生不滅이라. 來也來從何所하야 去也 去至何所아 本無有一衆인대 何處寂滅法인가. 透水月華는 虛可見인대 無心鏡象昭常空이네. 大衆은 此道理를 會麽아. 八公山色非他物 明月淸風不是塵 頭頭盡是吾家物 信手拈來用得親 법상에 올라 말씀하시되, 한 생각도 일으키지 않으면 전체가 드러남이라. 신령스런 알음알이가 홀로 나타나 남도 없고 멸함도 없음이라. 오기는 어디서 왔다가 가기는 어디로 가는가? 본래 한 중생도 없는데 어느 곳에서 적멸을 이루어가는가. 달빛은 물을 뚫어 가히 볼 수 있는데 無心이란 거울은 만물을 비추어 텅 비어 있네. 대중은 이 도리를 알겠는가. 팔공한 산빛이 다른 물건이 아니요 밝은 달 맑은 바람이 다른 경계가 아니다. 두두물물이 모두 나의 물건이니 손 가는 대로 자유자재로 사용하네. |
상당법어(5) |
上堂云호대 愚人은 忘境則不忘心하고 智者는 忘心則不忘境이라. 心境俱寂하면 萬物而空寂이라. 若人心不强名하면 如何好醜從而起리요. 釋迦가 不出世하고 達摩不西來라도 處處皆歸路요 頭頭是故鄕이라 若人欲識西來意하면 颯颯松風長擧示이라. 법상에 올라 말씀하시되, 어리석은 사람은 경계를 잃어버리나 마음은 잃어버리지 않고, 지혜스런 사람은 마음을 잊으나 경계를 잊어버리지 않는다. 마음과 경계가 함께 고요하면 만물이 본래 공적함을 알리라. 만일 사람이 마음으로 구태여 이름을 붙이지 않았다면 어찌 좋고 나쁜 것이 일어나리요. 석가가 세상에 나오지 않고 달마 또한 세상에 오지 않았더라도 처처에 돌아가는 길이요 삼천대천 세계가 그대들의 고향이리라. 만약 西來意를 알고자 하면 솔솔 부는 솔바람이 그 뜻을 보여주고 있음을 알라. |
상당법어(6) |
上堂云호대 靜也면 千般現하고 動也면 無一物이다. 無無是什麽인가. 霜後而菊稠也로다. 參到百不會하면 便是露團團이리라. 疑盡情忘處에 趙州是何顔이런가. 若也別生念하면 眼前蜀道難이라. 何勞向外覓고 放下萬事看이면 春風花萬開리라. 법상에 올라 말씀하시되, 고요하면 천 가지가 나타나고 움직이면 한 물건도 없다. 없다 없다는 것, 이것이 무엇인가. 서리온 뒤 국화가 무성하다. 참구하여 아무것도 모르는 경지에 이르면 진여가 곧 분명히 드러나리라. 의심이 다하고 생각이 끝나는 곳에 조주 스님의 얼굴이 어떠한가. 만일 생각을 따로 낸다면 눈앞의 촉도가 험난하리라. 어찌하여 힘써 밖을 향해 찾고자 하는가?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자세히 바라보면 봄바람에 꽃들이 만개하리라. |
상당법어(7) |
上堂云호대 生何勝也요 死何忙이라. 五十餘年이 似石火光이라. 密葉森森은 雷雨日하고 寒枝落落은 雪霜天이로다. 古人의 契證處는 佛法別無也라. 正要絶情量하면 當陽便承當하리라. 本心本空寂이요 本法本無生이라. 此作智慧觀하면 是明見佛이라. 法法不相倒요 佛眼觀不見이라. 법상에 올라 말씀하시되, 삶은 얼마나 훌륭했는데 죽음은 이렇게 바쁨이라. 50여 년이 마치 전광석화 같음이라. 빽빽한 나무는 소낙비가 내린 것 같고, 한겨울 떨어지는 나뭇잎은 서리 낀 하늘에 눈이 날리는 것 같다. 옛 사람들의 깨달음이라고 말하는 것은 따지고 보면 불법은 원래 별것이 아니다. 바른 뜻과 감정으로 헤아림만 끊어버리면 당장에 수긍하리라. 본심은 본래 텅 비어 고요하며 본래 법에는 태어남이 없음이라. 이런 지혜로 관찰하면 바로 이것이 불성을 보는 것이다. 법과 법은 서로 범하지 못하고 부처의 눈으로 볼 수 없음이라. |
상당법어(8) |
上堂云호대 當知하라. 妙法은 宿業焚하고 六窓玉毫가 滿天地인데 世人은 不識常道하고 失本分하야 廻路忙忙이라. 若更尋玄妙하면 浮雲遮日光이라. 山河大地가 是我家인데 更於何處覓鄕家리요 虛空不是藏身處리니 森羅萬象이 同歸幻이라. 百尺竿頭能闊步요 恒沙諸佛眼前花로다. 법상에 올라 말씀하시되, 마땅히 알아라. 妙法은 宿業을 태우고 육창의 옥호광명이 천지에 가득한데 세상 사람들은 진실한 도를 알지 못하고 본분을 잃고 돌아가지 않는다. 만약 다시 현묘함을 찾으면 뜬 구름이 햇볕을 가리리라. 산하대지가 내집인데 다시 어느 곳에서 고향집을 찾으리요. 허공은 원래 숨을 곳이 아니니 삼라만상이 끝내는 꿈으로 돌아간다. 백척간두 위에서 활보할 수 있으면 항하사 같은 부처도 눈앞의 꽃과 다를 바 없음이로다. |
상당법어(9) |
上堂云호대 春早梅花發하고 秋深夜菊開로다. 歸眞了妄空이요 生佛本通同이다. 迷似蛾投焰이요 悟如鶴出籠이라. 水上泥牛가 元不住요 空中木馬가 亦長鳴이라. 大衆會麽아 念佛者는 卽往하고 修悟者는 得生法身하고 速成正覺하리라. 법상에 올라 말씀하시되, 봄이 이른데 매화는 피고 가을이 깊어 들국화는 피었구나. 眞에 돌아가 妄이 텅 비어 있음을 알면 중생과 부처가 본래 같은 것이다. 미혹함은 나비가 불에 떨어짐 같고 깨침은 학이 새장을 벗어남과 같다. 물 위의 진흙소는 원래 머물지 않음이요 허공 가운데 나무말이 슬피 우는구나. 대중은 알겠는가. 염불한 사람은 곧 왕생하고 닦아 깨달은 사람은 법신을 얻어 속히 정각을 이루리라. |
상당법어(10) |
上堂云호대 到閻羅大爐鞴所는 將何面目免煎熬런가. 五祖云 守本眞心이 勝念十方諸佛이라 하시고 六祖云 常念佛佛하면 不免生死라. 守我本心이 卽到彼岸이니라. 又云 佛向性中作이요 莫向身外求니라. 又云 迷人은 念佛求生하고 悟人은 自淨其心이니라. 又云 大抵衆生이 悟心自度는 佛不能度衆이니라. 無限淸風與頭角이나 盡同雲雨去難追니라. 법상에 올라 말씀하시되, 염라대왕의 풀무간에 이르를 때에는 장차 무슨 면목으로 끊음을 면하려 하는가. 五祖 스님이 이르기를 ‘자기의 참마음을 지키는 것이 시방세계의 부처님을 생각하는 것보다 낫다.’고 하였다. 六祖 스님이 이르기를 ‘항상 부처님만 생각하면 생사를 면치 못한다. 자기의 불심을 지켜야 곧 피안에 이른다.’하였다. 또한 ‘부처는 자기의 성품 속에서 지을 것이지 자기 밖에서는 구하지 말라.’고 하였다. 어리석은 사람은 염불하여 극락세계에 나고자 하지만 깨친 사람은 그 마음을 스스로 깨끗이 할 뿐이다. 중생이 마음을 깨쳐 스스로 건지는 것이지 부처님이 중생을 건져주는 것은 아니라고 하였다. 맑은 바람 무소의 뿔, 그것을 잡으려 드나 구름 흘러가고 비는 그쳤으니 쫓을 길 없다. |
상당법어(11) |
上堂云호대 大衆은 聽我言하라. 欲明正覺하야 斷除塵惱하면 超凡入聖하리라. 先須去皮換骨하야 如寒灰發焰하며 枯木重榮이니 豈可作容想이리요. 自性은 無染無雜하야 去來自由하니 通用無滯하니라. 法無頓漸이나 人有利鈍하고 本性은 元無差別이니라. 법상에 올라 말씀하시되, 대중들은 나의 말을 잘 들어라. 정각을 밝히려 진뇌를 끊으면 범부를 뛰어넘어 聖位에 오르게 되리라. 먼저 가죽을 벗기고 뼈를 바꾸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 마치 차가운 재 속에서 불꽃이 튀며 마른 나무에서 새싹이 돋는 듯 해야 하니 어찌 쉬운 생각을 낼 수 있으랴? 자성은 물들지 않고 번뇌와 섞이지 않아서 오고 감에 자유롭고 통용함에 걸림이 없나니라. 법에는 돈점이 없으나 사람에게는 영리함과 우둔함이 있을지언정 본성은 원래 차별이 없나니라. |
상당법어(12) |
上堂云호대 先師 高峰和尙이 敎人호대 惟以所參話頭로 蘊之於懷하고 行也如是參하며 坐也如是參하야 參到用力不及處와 留意不得時하야 驀忽打脫하면 方知成佛이 其來舊矣니라. 言一著子는 是從上佛祖了生脫之旣驗三昧니 念念般若觀照하라. 법상에 올라 말씀하시되, 선사 고봉 화상은 항상 학인에게 이르시기를 오직 본참공안을 가슴 속 깊이 간직하고, 다닐 때도 참구하고 앉을 때도 참구하라. 궁구하여 힘이 미치지 못하고 생각이 머무를 수 없는 곳에 이르러 문득 타파하여 벗어나면 바야흐로 성불한 지 이미 오래임을 알 것이다. 이 도리는 모든 불조가 생을 요달하고 죽음에서 벗어남에 시험하신 묘방이다. 오직 귀한 것을 믿을 뿐이다. 특별한 방편을 구하지 말고 생각 생각 지혜로 관조하라. |
상당법어(13) |
上堂云호대 生不知來處하니 謂之生大요 死不知去處하니 謂之死大라 臘月三十日이 到來하면 只落得手忙脚亂하리라. 何況前路茫茫하야 隨業受報하리니 正是要緊事는 在這箇是生死境이라. 掃除忘念하고 認取本來面目하면 大解脫漢이라. 법상에 올라 말씀하시되, 태어나되 온 곳을 알지 못하니 生大라 하는 것이요, 죽어가되 가는 곳을 알지 못하니 死大라 하는 것이다. 납월 30일이 닥치면 오직 손발을 버둥거릴 뿐이며 나아가 앞길이 망망하여 업을 따라 보를 받게 되니 참으로 요긴한 일은 생사의 지배를 받는 데 있다. 망념을 제거하고 본래면목을 알게 되면 생사에서 자유스러워지리라. |
상당법어(14) |
上堂云호대 萬法歸一이니 一歸何處요? 不得不看話頭하고 守空靜而坐하며 不得念話頭하야 無疑坐니라. 擧起分明한 甚妙裁라 個中消息無多子하야 通身歡喜하리라. 법상에 올라 말씀하시되, 만법이 하나로 돌아가니 그 하나는 어디로 돌아가는고? 공부를 짓되 화두를 참구하지 아니하고, 비고 고요한 것을 지켜 앉아 있지 말며, 화두를 생각지도 말며 의심없이 앉아 있지도 말지니라. 잡아들면 분명히 심묘한 것이 있을 것이며 그 가운데 특별한 소식도 없을 것이니 이 도리를 알면 몸 전체에 환희가 충만하리라. |
상당법어(15) /마지막 회 |
上堂云호대 壇經에 敎하대 迷人은 念佛하야 往生彼하고 悟者는 自淨其心하나니 所以佛言하사대 隨其心淨하야 則佛土淨이라 하니라. 心但無不淨하면 西方去此不遠이요 心起不淨之心하면 念佛하여도 往主難到니라. 卽知하라 心外別無淨土니라. 법상에 올라 말씀하시되, 육조단경에 이르기를 “迷한 사람은 염불하여 극락세계에 가기를 원하고 깨달은 사람은 그 마음을 깨끗하게 밝힌다.”고 하였다. 부처님이 말씀하시되, “그 마음 깨끗함을 따라서 불국토도 깨끗하나니라. 마음에 다만 깨끗하지 않음이 없으면 서방정토도 여기서 멀지 않고 마음에 깨끗하지 못한 생각이 일어나면 염불을 해도 서방정토에 왕생하기 어렵다. 바로 알아라. 마음 밖에 특별히 정토가 없나리라.” |
오늘을 잡아라 |
불교를 말하면 극락을 생각하고, 극락을 말하면 불교는 피안을 위한 현실부정적 ‘독트린’을 가진 종교라고 생각하기 일쑤다. 불교가 종교라는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그러나 불교가 현실부정적 가르침이라는 말은 불교를 이해하지 못했다는 반증이 된다. 부처님 오신 날이면, 고타마 싯다르타가 룸비니동산에서 일곱 걸음을 걸으시면서 ‘천상천하유아독존’이라고 외치셨다는 것을 쉽게 생각한다. 그러나 그 한마디야말로 불교의 생명을 갈무리하고 있는 근원인 것이다. 사후에 극락을 가기 위한 노력으로 불교를 믿는다고 하면 불교는 벌써 삼천년 가까운 역사를 무시하고 인간 사회에서 완전히 소외당하고 말았을 것이다. 싯다르타 태자가 태어난 것은 세계가 열린 것으로, 태자가 대지 위에 일곱 걸음을 걸은 것은 그의 세계를 건설한 것이고, 천상천하유아독존이라고 부르짖은 것은 세계의 지배자이자 창조자임을 갈파한 것이다. 어찌 태자만 그러랴! 우리 모두가 모태에서 태어날 때 부르짖은 高聲이 저 태자의 소리와 다르지 않으며 태자의 위치가 조금도 다를 것이 없는 것이다. 경전에 따르면 태자는 처음 허무와 회의를 느끼고 출가했다고 한다. 눈 쌓인 숲속에서 6년 동안 고행하면서 그가 깨달은 것이 무엇인가? 결코 신비스럽고 불가능한 것이 아니다. 그가 존재하고 인식하는 세계의 제일 원인이 바로 그 자신임을 깨달은 것이다. 가슴이 덜컥하고 눈에서 섬광이 번쩍하는 순간 그는 이 세상 그 누구도 경험하지 못한 대절망을 맛보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는 또 한번 가슴이 미어지는 소리를 고함쳤을 것이다. ‘천상천하유아독존!’ 인간에게는 아무런 보장도 없었다. 인간은 광야의 십자로에 그저 던져져 있었다. 태자는 대지를 굴러 다지면서 걸음을 옮겼다. 위치를 설정하고 세계를 창조했다. 이것이 인간이다. 인간은 제 자신의 세계를 스스로 창조한다. 인간은 자신의 의지에 따라 그 사회를 극락으로도 지옥으로도 만든다. 인간에게는 단지 자유만이 있는 것이다. 인간이 본래 향유하고 있는 자유를 어떻게 구사할 것인가 생각하는 것도 역시 자유다. 사회를 한탄하지 말고 자신을 격려하라. 인간은 자신의 주재자요 자신이 처한 세계의 주재자며, 모든 현실의 원인이 되기 때문이다. 불교의 교의가 覺을 촉구하고, 안락한 내세를 위해 오늘의 선행을 가르치는 것도 인간의 노력에 따라서만이 인간이 향상될 수 있기 때문이며, 현실의 개척이 미래에의 보장이 되기 때문이다. 모든 생명력을 다하여 이 순간을 사는 것, 그것이 불교이다. 해마다 되풀이되는 성탄일을 의례적인 의식을 집행하고 즉흥적인 행사나 하는 날로만 생각해서는 안 된다. 어느 순간, 어느 날이라고 그러지 않는 것은 아니나, 적어도 이날만큼은 우리 모두가 생의 환희를 느끼는 날이 되어야 하고 자신에게 가장 충실한 날이 되어야 할 것이다. 내년이면 또 그날이 온다. 그러나 이것은 관념이다. 내일에 속지 말고 오늘을 잡아라! 거기 생명의 빛이 솟는다. |
번뇌와 보리 |
하루살이 날벌레는 어두운 밤에 불빛을 보고 마구 달려들어 타오르는 불꽃 속에서 자기 몸을 태워버리고 만다. 이것은 인생을 비유한 말이다. 탐, 진, 치 삼독의 불꽃에 자신을 태워버리고 마는 것이 중생의 인생이다. 중생의 앞길을 막는 것이 탐욕과 성냄, 어리석음이다. 이 삼독심이 맑은 지혜를 가로막고 검은 구름같이 어두워져 날벌레와 같이 불꽃에 마구 덤벼드는 것이다. 불교는 삼독심을 해탈하고 지혜를 밝히는 수행의 종교다. 지혜가 밝은 곳에는 인생의 목적을 성취할 수 있지만 삼독심을 추구하는 인생은 필경 타오르는 불꽃에 빠지고 마는 것이다. 중생에게는 궁극적으로 두 가지 길이 있다. 탐, 진, 치 삼독의 길이 있고, 다른 하나는 이 삼독을 해탈하고 지혜를 밝히는 길이다. 다시 말하면 불교는 탐과 성내는 마음, 어리석음에서 일어나는 삼독의 번뇌를 벗어나 자신의 지혜를 밝혀 누구나 다 부처가 될 수 있는 성불에 있는 것이다. 즉, 삼독의 번뇌에 당황하거나 어떤 절대 신봉자를 따로 정해놓고 믿음만으로 족한 것이 아니다. 오직 인간 자신의 절대성을 찾는 것이다. 석가세존께서 사십구년 동안 설법한 법문이 모두 삼독의 번뇌를 해탈하는 데 있었던 것이다. 불교는 많은 법문이 있어 어느 것을 들어야 옳은 것인지 모르겠다는 말이 있지만 간추려서 말하면 불교는 결국 자기 해탈에 있는 것이다. 우리 중생은 본래 참 자아의 자리를 망각하고 악업을 지었기 때문에 본래 맑은 진아(眞我), 즉 지혜의 불성을 모르고 변하여 필경 없어지는 사대와 오온으로 이루어진 물질적인 면에만 집착되어 탐, 진, 치 삼독에서 해탈하지 못하는 것이다. (下略) |


그 후 상묵 스님은 뜻한 바가 있어 성균관대학교에서 철학을 전공하였으며 1961년에는 용주사 전문강원을 졸업하고 같은 해에 김석농(金石農) 스님을 법사로 전강(傳講)을 받으셨다.
1962년, 상묵 스님은 부산 범어사에서 하동산 스님을 계사로 구족계를 수지한 뒤 제방 선원에서 참선 수행에 전념하였다.
1966년 과천 관악산 연주암 주지, 1969년 서울 봉천동 관악사 주지, 1985년 경주 불국사 강주, 1994년 동국역경원 역경위원, 1996년 종립 승가대학원 교수를 역임하셨다.
그리고 1995년 11월 전등사의 조실로 주석하시면서 많은 납자와 사부대중에게 불법을 설하셨다.






"이때 스님은 아침에는 간경(看經)을 하셨고 오후에는 <금강경>, <법화경>, <반야심경>을 금분으로 사경하시는 일을 10여 년간 쉬지 않고 하셨다."
2000년 12월 28일(음력 12월 3일) 오후 9시 30분, 상묵 큰스님은 전등사 극락암에서 열반적정에 드셨다. 이때 상묵 큰스님이 제자와 사중 스님들에게 남긴 열반송은 다음과 같다.
사대금리주(四大今離主)
진인화중소(眞人火中笑)
심마시하물(甚磨是荷物)
개중무불조(箇中無佛祖)
진인화중소(眞人火中笑)
심마시하물(甚磨是荷物)
개중무불조(箇中無佛祖)
상묵 큰스님의 상좌로는 성대 스님과 장윤 스님이 계시고, 범우·만학·서래·혜안 스님 등 손상좌가 계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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