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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sub533 2014-04-16 현대 미술의 보고 전등사를 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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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2,506회 작성일 14-11-06 1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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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신자 아닌 필자도 이곳에서 편안함을 느꼈다

[국립중앙도서관 ‘길 위의 인문학’ 연재] ③ 강화 ‘현대 불교미술의 보고, 전등사를 찾아서’

[인천 강화] 부처는 길에서 태어나 길에서 깨닫고 길에서 죽었다고 한다. 그러고 보면 부처도 길 위에서 인문학을 만난 것 아닌가. 우리가 별 생각 없이 지나쳐가는 ‘길’들도 알고 보면 더 없이 좋은 학교다.

국립중앙도서관, 교보문고, 조선일보가 공동 주최하는 ‘길 위의 인문학’은 참여자들이 보고 듣고 느끼며 생생하게 인문학을 접할 수 있도록 길 위의 학교를 열어주는 프로그램이다. 참여자들은 초빙 강사와 함께 각 탐방 주제와 연관된 지역을 투어하며 인문학 수업을 듣는다.

프로그램 참여자로 선발되려면 추천도서를 읽고 독후감을 내야 하는데, ‘아는 만큼 보인다’라고 하지 않나. 추천도서를 통해 탐방 주제와 가까워진 참여자들, 그리고 탐방 주제와 관련된 전문적 지식을 갖춘 강사가 ‘길 위에서’ 좋은 학생과 좋은 선생으로 만나는 것이다.
판화공방 앞에서 열린 홍선웅 판화작가의 강의
강화도록 가는 길목, 판화공방 앞에서 열린 홍선웅 판화작가의 강의. ‘길 위의 인문학’은 참여자들이 보고 듣고 느끼며 생생하게 인문학을 접할 수 있도록 초빙 강사와 함께 각 탐방 주제와 연관된 지역을 투어하며 인문학 수업을 듣는 프로그램이다.

지난 4월 12일 탐방의 행선지는 인천시 강화군이었다. 강화도는 단군과 마니산, 고려 강도시대, 조선의 개항 등 우리 역사의 굵직한 획들이 그어진 곳으로 우리에게 이미 익숙하다. 그런데 이번 탐방은 강화의 역사보다는 ‘미술’에 초점을 맞춰 우리가 잘 몰랐던 강화의 새로운 매력을 느끼도록 기획됐다. ‘현대 불교미술의 보고, 전등사를 찾아서’라는 주제로 진행된 이번 탐방에는 가천대학교 미술대 윤범모 교수가 동행했다.

배움에 대한 참여자들의 남다른 열정과 진지함이 첫 출발에서부터 느껴졌다. 참여자들은 아침 7시 40분까지 국립중앙도서관에 모였다. 집결 시간 10분 전, 한 사람 빼고 모든 참가자가 이미 차량에 올라타 있었다. 마지막에 온 사람도 지각은 아니었다. ‘길 위의 인문학’ 관계자에 따르면, 국립중앙도서관 집결을 위해 부산이나 진주에서 오는 사람들도 있다고 하는데, 이번 탐방에 대한 참가자들의 열의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강화도로 가는 길목에서 판화작가 홍선웅을 만났다. ‘길 위의 인문학’ 일행은 홍선웅 작가의 문수산 판화공방 앞 작은 마당에 옹기종기 모였다. 홍 작가가 작업하던 목판에 칠해진 먹물 냄새가 은은하게 퍼졌고 멀리서 들려오는 닭 우는 소리가 아직 덜 깬 졸음을 쫓으려는 것 같았다. 홍 작가는 우리나라 판각문화의 역사에 대해 짧고 굵은 강연을 펼쳤고, 판화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직접 조각도를 들고 판에 각하는 시범을 보여주기도 했다.
판화공방 내부 판고, 먹판화 설명, 먹판화를 찍어내는데 이용되기도 하는 천, 채색 판화 (시계 방향)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 판화공방 내부 판고, 먹판화에 대해 설명 중인 홍선웅 작가, 채색 판화, 먹판화를 찍어내는 데 이용되는 천,

공방 안에서 참여자들의 눈은 더욱 분주히 움직였다. 1층의 좌측 어두운 방에는 홍선웅 작가가 작업했던 판들이 보관돼 있었다. 우측 방에서는 전통적인 느낌이 배어나는 먹판화들을 볼 수 있었다. 밝은 조명의 2층 방에서는 채색 목판화들이 따뜻한 기운을 뿜어내고 있었다. 공방에 있는 판각도구, 한지 등 이것저것을 아낌없이 보여주고 설명해준 홍선웅 작가 덕에 꽉 찬 한 시간을 보냈다.

홍선웅 작가의 공방을 나온 우리는 대한민국 판각문화의 뿌리를 향해 좀 더 거슬러 올라갔다. 구국의 염원이 서린 팔만대장경이 판각됐다고 전해지는 선원사지가 그곳. 근처에서 텃밭을 가는 한 아주머니의 호미질 소리가 가장 크게 들릴 정도로 고요한 이곳은 노란 민들레와 분홍빛 꽃나무, 그리고 녹색 들판이 눈에 들어오는 전부였다.

막상 와보니 여느 마을의 공터마냥 별거 없다고 생각하려는 찰나, 윤범모 교수의 말이 가슴에 꽂혔다. “한번 이루어진 것은 언젠가는 무너진다는 말이 있습니다. 폐허가 된 절터는 우리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해줍니다. 볼 것이 없지만 사실은 볼 것이 있는 거죠. 지금은 민들레가 이곳의 주인 노릇을 하고 있지 않습니까? ”
선원사지 민들레
팔만대장경이 판각됐다고 전해지는 선원사지의 민들레.

비록 지금은 폐허가 됐지만 선원사지는 우리나라 인쇄 문화의 현장이었다. 그 자리에서 인쇄문화의 출발점인 ‘종이’에 대한 강의가 이어졌다. 중국에서 발명된 종이는 고구려 유민 고선지 장군에 의해 서양으로 전파됐다고 전해진다. 강의를 들으며 우리 민족이 인류 문화 발달에 있어 하나의 훌륭한 다리 역할을 했다는 생각에 가슴이 벅찼다.

점심식사 후, 단군의 세 아들이 쌓았다는 삼랑성의 성문을 지났다. 마침내 이날 강화 탐방의 핵심코스인 전등사에 들어선 것이다. 대웅전 앞에 선 참여자들의 눈빛은 기대감과 함께 더욱 진지해 보였다. 윤범모 교수는 대웅전의 건축적 특징과 전등사의 전체적 특징에 대해 설명했다. 비가 잠시 추적추적 내렸지만 사색하며 전등사를 찬찬히 둘러보기에 오히려 적절했다.
선원사지 금당지 앞, 모두가 윤범모 교수의 강의를 주의깊게 듣고 있다
선원사지 금당지 앞. 참가자 모두가 윤범모 교수의 강의를 주의깊게 듣고 있다

전등사 대웅전은 나부상에 얽힌 전설 때문에 더욱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대웅전 공사 때 참여한 도편수는 마을의 주모와 깊은 사랑에 빠져, 공사가 끝나면 주모와 결혼할 생각으로 모아둔 돈 전부를 맡겼는데 주모는 돈을 가지고 사라졌단다. 상심한 도편수는 대웅전의 처마 밑에 자신을 버리고 도망간 주모를 조각해 무거운 지붕을 평생 떠받들게 했다는 이야기다.

벌거벗은 여인의 형상이 아니라 사찰을 지키는 원숭이상이라는 말이 더 설득력 있어 보인다. 그래도 ‘도편수와 주모의 이야기’는 나부상을 보는 이로 하여금 사색에 잠기게 했다. 사랑에 배신당한 이의 상처, 미련에서 기인한 복수심 때문이었을까? 아니, 어쩌면 자신이 깊이 사랑했던 여인에게 잘못을 뉘우칠 기회를 주고 싶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전등사 지붕을 떠받치고 있는 나부상 (출처=한국저작권위원회,남윤중)
전등사 지붕을 떠받치고 있는 나부상 (출처=한국저작권위원회, 남윤중)
윤범모 교수의 강의는 무설전 입구에서 이어졌다. 윤 교수는 무설전 신축을 위해 구성됐던 ‘무설전 창작단’의 기획 및 출판 담당으로도 활동한 바 있다. 그런 그가 무설전 신축에 있어 중요하게 고려됐던 사항들에 대해 들려줬다.
한 마디로 ‘화이부동’. 현대적 감각에 맞게 창의성을 꽃피우면서도 기존 사찰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해치지 않도록 한 것이다. 무설전은 지하공간에 조성돼, 있는 듯 없는 듯하다. 불화에 서양식 프레스코 기법을 사용하고 출입구에 서운갤러리를 만들어 현대미술 작품을 전시하는 등 현대화를 꾀했다. 기존의 위압적이고 화려한 느낌 대신 ‘동네아저씨’ 이미지를 부여해 친근감 있는 불상을 만들었다.
무설전 입구. ‘그림이 있는 법당입니다’이라고 쓰여진 푯말이 눈에 띈다.

윤범모 교수가 강조한 것들을 곱씹으며 무설전 안으로 들어섰다. 탐방 주제인 ‘현대 불교미술의 보고, 전등사를 찾아서’의 의미가 이해되는 순간이었다. 무설전이 바로 시대정신과 창의성을 바탕으로 한 현대 불교미술의 시작점이자 보고였던 것이다.

불교신자가 아닌 필자에게도 예스럽다는 느낌을 주며, 위화감을 주었던 기존 사찰들과 달리 부담스럽지 않고 편안한 공간이었다. ‘길 위의 인문학’ 참여자들은 이 새로운 예술작품을 마주하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무설전 안에 있는 동안 카메라 셔터 누르는 소리도 끊임없이 들렸다.
겉으로 크게 드러나지 않는 무설전, 무설전 내부, 무설전 천장 연등, 현대미술작가의 작품  (시계방향)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 겉으로 크게 드러나지 않는 무설전, 무설전 내부, 현대미술작가의 작품, 무설전 천장 연등.
마지막 일정으로 강화 고인돌 공원 내에 있는 강화역사박물관에 들렀다. 강화역사박물관은 강화의 유물과 영상자료, 아기자기한 모형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강화의 역사를 소개하고 있었다. 참여자들은 이곳에서 시대별로 강화의 역사적 의미를 되새기며 이날 강화에서 배운 것들을 정리하는 시간을 가졌다.

작년에도 ‘길 위의 인문학’ 행사에 여러 번 참가했다는 직장인 홍성진 씨는 “평소 인문학에 관심이 많은데, ‘길 위의 인문학’을 통해 모르던 것을 배우게 돼 좋다.”며 “특히, 활자만 읽고 끝나는 게 아니라 현장을 직접 찾아 오감으로 느끼니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고 말했다.
강화역사박물관 입구
강화역사박물관 입구. 참가자들은 이곳에서 강화의 역사적 의미를 되새기며 이날 강화에서 배운 것들을 정리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날 친구끼리, 가족끼리 온 참가자들이 많았는데 모녀가 함께 오기도 했다. 이은미(52) 씨에게는 이번이 딸과 함께하는 두 번째 탐방이었다. 대학생 딸인 하성아(21) 씨는 인문학 탐방에 대해 “상식이 많아지는 것 같아요. 오늘 강의 들은 것 중에 평소 듣는 철학 강의와 겹치는 부분이 있어 도움이 많이 됐어요.”라고 말했다.
전등사 대웅전 앞 단체사진
전등사 대웅전 앞에서 참가자들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길 위의 인문학’은 인생을 함께하는 소중한 사람과 떠나는 특별한 여행이기도 하다. 필자처럼 혼자 온 사람에게는 평소 무심했던 자기 자신과 많은 대화를 나누는 뜻 깊은 여행이다. 가던 길에서 잠시 빠져나와 다른 길 위에 멈춰 서서 내 안의 나, 역사와 사회의 관계 속 나를 발견해 보는 시간, 나쁘지 않다.

정책기자 임서인(대학생) standingyim@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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