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전등사 조실 정암당 세연 대종사 원적 - 현대불교 26. 2.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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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전등사 댓글 0건 조회 18회 작성일 26-02-21 13:37본문
2월 16일, 장윤 스님 등에 열반송 전해
2월 20일 전등사서 문도장으로 엄수

전등사 조실 정암당 세연 대종사. 사진 제공=전등사.
전등사 조실 정암당(靜庵堂) 세연(世衍) 대종사가 2월 16일 오전 9시 40분 원적에 들었다. 법랍 63년, 세수 86세.
분향소는 전등사 역사문화교육관에 마련됐으며, 영결식은 2월 20일 오전 10시 전등사 역사문화교육관에서 문도장으로 엄수된다.
전등사(주지 여암 스님)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세연 스님은 조카 상좌인 장윤 스님(전등사 회주)을 비롯한 후학들에게 “육십 년 지혜검 찾으러 남북동서로 쏘다니다 준제지송 칠천만 번에 업장 소멸하고 이제 고향으로 돌아가네”라는 열반송을 남기고 영면에 들었다.
세연 스님은 1941년 8월 18일 경남 하동에서 태어나 1961년 마산 광산사로 출가했다. 당시 대처승이 주지로 있던 마산 광산사는 수행처로 적절하지 않다는 판단에 향곡 스님이 주석하던 기장 묘관음사를 찾아갔지만 입방을 허락하지 않아 도반과 함께 상의해서 찾아간 곳이 상주 갑장사였다.
세연 스님은 당시 상주 갑장사에 주석하고 있던 서운 대종사를 은사로 1962년 출가했다. 이후 1963년 직지사에서 고암 스님을 계사로 사미계를, 1971년 범어사에서 석암 스님을 계사로 구족계 수지했다.
1966년 동화사 강원에서 학봉 스님, 상묵 스님에게서 사집과를 배우고, 안양 보장사에서 관응 스님에게 대교과를 배웠다.
1975년 양주 흥국사 주지, 1979년 현풍 유가사 주지, 1980년 강화 전등사 주지, 1988년 성남 장경사 주지 등을 거쳤고 1984년에는 조계종 제8대 중앙종회의원을 역임했다. 2018년에는 종단 최고 법계인 대종사 품계를 품수했다.
세연 스님은 1992년부터 18년 동안 묘적암, 보리암, 갑사 등지에서 하루 10시간씩 1만 번 준제다라니를 염송하는 주력기도에 매진했다. 특히 1995년 갑사에서 수행할 때는 ‘설사 견성하지 못하더라도 전생의 죄는 다 갚는다’는 <능엄경>의 구절을 보고 왼손 손가락 하나를 연비했다. 이후에도 원주 구룡사, 김포 약사사 등에서 500일 기도를, 영동 삼봉산 토굴에서 10년 정진을 이어갔다.
2012년 보림처인 강화 전등사로 온 세연 스님은 전등사 조실로 추대돼 후학과 신도들을 제접하며 염불주력 수행에서 깨달은 바를 법문으로 전했다. 법문집으로 <산승, 기억의 창을 열다>가 있다.
전등사는 “대종사께서는 최근까지 시자 없이 홀로 전등사 극락암에 기거하며 빨래도 직접 하고, 점심을 제외한 공양도 몸소 해결하시며 보내셨다”며 “지난해 늦은 가을 급격히 체력이 떨어지고 숨도 가빠지는 증상을 보여 동국대학교 병원에 입원해서 진료한 결과 폐암 3기 진단을 받았다”고 밝혔다.
이어 “대종사께서는 담담히 이를 받아들이시고 머무시던 극락암으로 돌아올 것과 일체의 수술이나 약물치료 그리고 어떤 연명치료도 하지 않을 것임을 천명하시고 열반하시는 날까지 평소와 다름없이 예불과 기도로 일관하셨다”고 전했다.
정암당(靜庵堂) 세연(世衍) 대종사 열반송
六十年來尋劍客
南北東西逩走行
准提持頌七千萬
業障消除歸故鄕
육십 년 지혜검 찾으러
남북동서로 쏘다니다
준제지송 칠천만 번에
업장 소멸하고 이제 고향으로 돌아가네
출처 : 현대불교(https://www.hyunbu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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