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번째 찾은 '전등사', 추억은 여전했다 - 세종의소리 26.1.25 > 언론속전등사

본문 바로가기
언론속전등사
참여마당 언론속전등사

뉴스 세번째 찾은 '전등사', 추억은 여전했다 - 세종의소리 26.1.25

페이지 정보

작성자 전등사 댓글 0건 조회 19회 작성일 26-01-26 13:52

본문

83865_104586_306.jpg

강화 전등사는 추억 속의 절이다.


패기발랄했던 대학시절, 사학을 전공하면서 고적답사를 왔던 곳이다. 당시 동료들과 함께 대웅전 앞에서 찍었던 장면들이 빛아 바랜 채 사진 첩 속에 고스란히 간직되어 있다. 그걸 보는 건 추억을 되새기를 일이었다.


그리고 1995년 서울 근무시절.


열 살, 여덟 살 된 딸과 아들, 아내와 함께 대학시절 전등사를 생각하면서 다시 강화를 찾았다. 그날의 기억은 대웅전 앞에서 촬영했던 또다른 가족사진이었다.  30년이 지난 지금도 추억으로 남아 있다. 또 한 가지. 행주대교를 건너 김포를 거쳐 강화도로 갈 때는 쉬웠다. 그런데 올 때는 교통지옥이었다. 얼마나 애를 먹었던지 지금도 기억이 생생하다.


83865_104579_300.jpg


세 번째 방문은 지난 해, 그러니까 2025년 말이었다. 첫 번째, 두 번째 방문의 기억을 되살리는 여행이었다. 예전에 못보았던 게 보였다. 인생이 원숙해졌다는 의미일까.


대웅전 앞에서 한참동안 옛 생각에 잠겼다. 행복하고 흐뭇했다. 이번에는 이소(離巢)한 아들, 딸은 없었고 아내만 함께 했다.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선 내 누님같이 생긴 꽃’처럼 인생 후반에 찾았다. 세월은 많이 많이 흘렀지만 생각은 여전했다.


전등사는 381년 아도화상이 창건한 절로, 창건 당시에는 진종사라고 불렀다. 1282년 충렬왕의 비인 정화공주가 승려 인기를 중국 송나라에 보내 대장경을 가져오게 하고, 이 대장경과 함께 옥등을 이 절에 헌납한 후로 전등사라 불렀다.


83865_104591_4018.jpg


큰 불로 건물들이 몇차례 소실되기도 했으며 1621년 불사로 건물을 완성했다. 1707년 사각을 고쳐 짓고 별관인 취향당을 지었으며, 그뒤 여러 차례에 걸쳐 중수되었다.


경내에는 대웅전(보물 제178호)·약사전(보물 제179호)·명부전·삼성각·향로각·적묵당·범종각 등이 있다. 중요문화재로는 중국 북송시대의 범종(보물 제393호)과 조선시대의 법화경판(1544)이 전해지고 있다.


83865_104592_4435.jpg

83865_104580_301.jpg

83865_104573_2957.jpg

83865_104574_2958.jpg

83865_104576_2959.jpg

83865_104577_2959.jpg

83865_104581_302.jpg


83865_104578_300.jpg

83865_104587_307.jpg

83865_104589_308.jpg

83865_104590_309.jpg

83865_104585_305.jpg

83865_104584_304.jpg

83865_104582_302.jpg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밴드 보내기
  • 블로그 보내기
  • 카카오스토리 보내기
  • 텔레그램 보내기
  • 텀블러 보내기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X

회원로그인


(우:23050) 인천광역시 강화군 전등사로 37-41
종무소 : 032-937-0125 팩스 : 032-232-5450
템플스테이 사무국 : 032-937-0152
COPYRIGHT 2006 전등사 ALL RIGHTS RESERVED.
그누보드5
(우:23050) 인천광역시 강화군 전등사로 37-41 종무소 : 032-937-0125 팩스 : 032-232-5450 템플스테이 사무국 : 032-937-0152
COPYRIGHT ⓒ 2005~2026 전등사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