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봉은사 대학생 수도원 - 서운스님 관련 기사 -불교신문2019.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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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전등사 댓글 0건 조회 2,181회 작성일 19-06-17 12:10본문
불교 홀대, 정부 탓인가인재불사의 요람, 봉은사 대학생수도원
- 박호석_전,대한불교삼보회 이사장
- 승인 2019.06.16 17:35
- 댓글 7
1965년 봄, 유원지나 다름없던 뚝섬 봉은사는 당시 대불련을 지원하던 덕산 이한상 거사의 도움으로 철조망 울타리를 두르고 요사를 정비한 다음 대학생 4명과 지도교수를 받아들였습니다. 대불련 구도부원들이 어쩌다 듣는 설법이나, 방학 때 열리는 일주일 남짓한 수련대회로는 자신들의 구도열망을 채울 수 없어 주속야승(晝俗夜僧)을 자청하였기 때문입니다. 한국불교사에서 지울 수 없는 족적을 남긴 봉은사 대학생수도원은 그렇게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그해 가을, 불교대중화의 선구자였던 광덕(1927~1999)스님께서 봉은사 주지로 취임하면서 대학생수도원은 탄탄한 활로를 갖추기 시작했지요. 수도원 학생들은 스님과 똑같이 새벽에 일어나 예불과 참선을 하고 나면 학교수업 준비하고 청소를 마친 다음, 광나루에서 배를 타고 각자의 학교로 등교했습니다. 그리고 방과 후에는 저녁 7시 이전에 돌아와서 예불을 마치고 학과복습과 참선을 하고나서야 9시에 취침하는 빡빡한 일과를 소화했습니다. 게다가 선방 수좌들처럼 대중방에 청산(靑山) 백운(白雲)의 용상방을 붙이고 소임을 맡아 정진하였는데, 당시 대학생수도원의 조실은 청담(1902∼1971)스님이었고, 봉은사 주지 광덕스님과 박성배(동국대) 교수가 늘 학생들과 함께 정진하신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또 주말이면 정기법회, 방학에는 수련대회가 열리고, 수련을 마치면 마치 운수납자처럼 효봉·경봉·향곡·월하·벽안·탄허· 전강 등 당대의 선지식을 찾아 구도행각을 하였지요. 특히 1966년의 첫 수련대회를 문경 김룡사에서 성철스님의 지도로 50일간 혹독하게 치룬 일은 우리불교계에서 두고두고 회자되는 엄청난 사건(?)이었습니다. 처음 4명으로 시작했던 원생이 한 달 뒤 8명으로 늘었고, 1968년부터는 신문 공고를 통해 공개모집하는 등의 체계를 갖추었지만, 수도원의 운영은 순탄하지만은 않았습니다. 당시 절 살림이 넉넉하지 않아 끼니를 걱정할 정도였던 데다, 정부의 강남개발과 맞물린 어수선한 봉은사 문제가 주지 사퇴로 이어지면서 더욱 시련이 클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도 후임 주지인 서운(1903∼1995)스님의 배려로 명성암에 별도의 독립적인 수련공간을 마련하고, 박성배교수의 출가로 공석이 된 지도법사를 법안(1932∼2007), 법정(1932~2010)스님이 맡았습니다. 그리고 이런저런 어려움 속에서도 6년이나 지속되었던 대학생수도원은 종단의 문제로 결국은 문을 닫고야 말게 됩니다. 비록 거쳐 간 원생들이 통틀어 50여명에 불과하였고, 어려운 여건 속에서 운영된 짧은 기간의 불사였지만 수도원이 이루어낸 성과는 참으로 괄목할만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한국불교는 물론 국가발전에 혁혁한 공헌을 한 인재를 양성하는 산실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한국불교 역사상 이처럼 눈부신 성과를 이룬 인재불사는 이전에도, 이후에도 없었습니다. 지금까지 출가사문의 길을 걷는 보명(김기중) 지환(한상수) 시명(도평원) 혜원(이학용) 스님, 한 때 퇴옹성철 스님에게 출가했던 박성배(원조, 미국 뉴욕주립대 교수) 이진두(원기, 불교신문 논설위원) 김금태(원공, 민속학), 정관계에서 두각을 보인 박세일(1948∼2017, 서울대 교수, 대통령수석비서관, 국회의원) 전창렬(육군소장, 법무감, 변호사) 김규칠(외교관, 불교진흥원 이사장) 이용부(문화관광부 종무관), 학자로 근면한 김선근(동국대 인도철학) 조용길(동국대 불교학) 김재문(동국대 법학), 그리고 김학진 김영호 박문효 황귀철 강우중 임동걸 등도 사회 각 분야에서 크게 기여하고 불자로서 모범을 보인 참으로 걸출한 인재들이었습니다. 특히 그들 가운데 이용부 종무관이 불교와 관련된 법안이나 국가정책을 입안하고 실행하는 중책을 수행하면서 한국불교발전에 음양으로 기여한 공로는 실로 가늠키 어려울 만큼 지대하였습니다. 대학생수도원이 박성배 교수를 중심으로 대불련 구도부원들이 한국불교 중흥을 위한 새로운 결사를 다짐하면서 시작되기는 했지만, 당시 봉은사 주지인 광덕스님과 그 후임인 서운스님의 인재양성에 대한 원력이 없었다면 결코 이루지 못했을 불사였습니다. 결코 드러내기가 쉽지 않은 자신들의 수행공간을 학생들과 나눈 스님들의 배려도 파격이려니와, 뚝섬에서 배를 타고 강을 건너 먼 길을 등하교해야 하는 어려움 속에서도 오직 구도열망 하나로 젊은 시절의 낭만을 포기한 학생들의 결단도 출가에 못지않았지요. 그런데 불행히도 봉은사 대학생수도원 이후에 우리 불교계에서 이러한 인재양성 불사가 단 한 차례도 없었습니다. 물론 산발적인 장학불사는 있었지만 이처럼 사회 각 분야에서 모범적인 불자로서의 삶을 실천하는 인재를 길러내려는 노력은 전혀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간 수도 없이 종단의 중진 스님들에 이를 건의해보기도 했지만 누구도 귀담아 듣지 않았습니다.
요즈음 정부에 대한 불교계의 볼멘소리가 부쩍 늘었습니다. 종단은 물론이고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에 민원이 많은 전통사찰의 주지스님들의 불평이 이만저만이 아니에요. 예를 들면, 국립공원문제를 논의하면서 불교계의 참여를 배제했다고도 하고, 도로교통표지판에 사찰이름을 지웠다고도 하고, 교과서 집필에 불교학자가 참여하지 못했다고도 하며, 각종 인허가 등에 불편이 많다고 하는 등등, 이루 헤아릴 수가 없습니다. 게다가 정부에 입각한 각료들 가운데 불자가 단 한사람도 없다고 교계언론이 입방아를 찧기도 합니다. 급기야는 문화재위원 위촉과 문화재구역 입장료 문제가 도마에 오르자, 조계종 중앙종회가 이달 25일에 의장단 및 상임분과위원장 연석회의를 소집해서 정부의 불교 홀대에 대한 대책을 논의한다고 합니다. 사실 이런 문제들이 정부나 정치인 탓도 있겠으나, 그보다는 인재양성을 소홀히 한 불자들의 책임이 더 큰 것으로 보입니다. 지금이라도 불교계가 대학이 밀집해 있는 도심 사찰에 학숙이나 방사를 마련하여 불교적 품성을 갖춘 인재를 양성하는 일을 다시 시작해야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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