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등사 2월 22일  벽암록 전등대법회 현장

2013년 이후 세번째의 법석
백칙공안 담은 벽암록 설해
승속 초월해 한자리서 탁마
“수행힘으로 코로나 극복을” 

2월 20일 입재식부터 25일까지 열린 ‘올바른 간화선의 뿌리를 찾아서―현기 대선사 초청 벽암록 전등 대법회’에서 〈벽암록〉을 강설하고 있는 현기 대선사.2월 20일 입재식부터 25일까지 열린 ‘올바른 간화선의 뿌리를 찾아서―현기 대선사 초청 벽암록 전등 대법회’에서 〈벽암록〉을 강설하고 있는 현기 대선사.

선의 향취를 물씬 풍기는 선풍진작의 장이 열렸다. 40년간 은둔수행 해 온 현기(83) 대선사가 7년만에 출문해 천재일우의 법석을 마련한 것이다. 2월 20일 입재식부터 25일까지 열린 ‘올바른 간화선의 뿌리를 찾아서―현기 대선사 초청 벽암록 전등 대법회’가 바로 그것이다. 이번 법회서는 5박 6일간 120여 수행납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탁마했다. 

2월 22일 오후 2시 강화 전등사 무설전. 바깥 기온이 영하 10도를 오르내리는 맹추위가 기승을 부리는데도 아랑곳 없이 승속을 초월한 120여 수강생들의 향학열로 후끈 달아 올랐다.  

선수행자들의 필독서로 꼽히는 〈벽암록〉을 펼치고 함께 강독하며 현기 대선사의 해설에 한마디라도 놓치지 않으려고 귀를 쫑긋 세웠다. 

법사로 초청된 현기 대선사는 당대의 선지식으로 꼽힌 향곡 스님 문하에서 성철 스님과 함께 정진해왔다. 또한 현기 스님은 보조국사 지눌 스님이 견성한 지리산 상무주암에서 40년 가까이 홀로 정진했다. 은거 수행하던 스님은 지금까지 2차례 대중 설법을 했는데, 2013년 서울 조계사와 2016년 대구 동화사서 열린 간화선 대법회에서만 모습을 드러냈다.

쉽게 친견 못할 기회여서 인지 사전에 일찍 신청 접수가 마감됐다. 참가 대중은 숙식을 함께하며 매일 오전 8시30분과 오후 2시 두 차례 100여분씩 진행되는 법문을 듣고 오전·오후 정진을 통해 실참실수를 병행했다.

코로나 방역기간임을 감안해 참가자 전원은 코로나 백신 3차 접종 완료자들로 제한했으며, 현장에 오지 못하는 이들을 위해 유튜브 채널 ‘전등사TV’를 통해서도 생중계했다.
20일 열린 입재식에는 전등사 조실 세연 스님과 주지 여암 스님 등 전등사 대중들과 전국 선원수좌회 대표 일오 스님, 선문화복지회 이사장 의정 스님 등 수좌 스님들도 참석했다. 

전국선원수좌회 대표 일오 스님은 “전등사 벽암록 전등대법회가 간화선 선풍이 진작되는 전환점이 될 것”이라며 수행 가풍이 이번 전등법회를 계기로 확산되기를 발원했다. 선문화복지회 이사장 의정 스님도 오랫만에 대중앞에선 현기 스님의 회향 공덕에 감사를 표했다.

전등사 조실 세연 스님은 이 자리에서 “전등사는 부처님 가르침을 전하는 사찰이란 의미”라며 “전등사서 대중들이 접하기 힘든 현기 스님의 가르침을 배우는 소중한 기회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번 전등대법회는 현기 스님을 법상에 모시고, 입정 이후 송광사 인월암 원순 스님이 벽암록 구절을 읽으면, 현기 스님이 그 내용과 의미에 대해 설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무설전 오른편에 앉은 50여 스님들이 강의를 듣고 있다.무설전 오른편에 앉은 50여 스님들이 강의를 듣고 있다.

강의 중간마다 대중이 함께 합송하며 입재와 회향에서는 정근도 진행됐다. 대중들과 함께 제방 선원에서 정진한 10명 남짓한 선원장과 선덕, 한주 스님들도 이번 법회에서 대중과 함께 공부하며 수행을 독려했다.

22일 현기 스님은 〈벽암록〉 2칙 ‘조주지도무난’에서 ‘고목용음’에 대해 “용의 읊조림은 어떤 장구인가. 조산이 이르되 어떤 장구인지 알지 못하지만 듣는자는 모두 죽는다. 다시 송이 있어 이르되 고목에 용이 읊조림에서 참으로 도를 보나니”라며 “촉루에 식이 없어야 눈이 처음으로 밝다. 희와 식이 다한 때에 소식도 다하나니, 당인이 어찌 탁중의 청을 분변하리오 하였다”고 설했다. 문구 하나 하나를 꾹꾹짚어 꼼꼼히 설명하는 노 대선사의 열정적인 모습에 많은 대중들은 집중했다. 법회가 진행되는 현장을 중계한 강의실 밖 유튜브 채널에서는 5000여 대중이 모여 현기 스님의 설법을 경청하는 등 비상한 관심을 끌었다.

대전서 온 김숙이 보살은 “저 같은 경우는 스님 법문을 운좋게 여러번 들을 기회가 있었기에 간절히 참가를 원하는 이들을 위해 처음에는 양보를 망설였지만, 그래도 현장서 직접 듣고 싶은 욕심이 생겨 빨리 마감전에 신청했다”며 “이번 법회를 계기로 불교 공부에 대해 새로운 다짐을 하게 됐다. 그리고 스님께서 핵심을 찔러 주시는 촌철살인 같은 벽암록 강의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이번에 시간상 5칙까지만 설하셨지만, 법회가 끝나고 이어서 더 깊이 공부할 생각”이라고 환희심을 피력했다.

사천에서 온 도념 김대진 거사도 “이번 귀중한 강의가 코로나 때문에 보다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지 못한 것이 아쉬움이 있다. 현대인들이 진리와 본분에서 벗어나게 생활하는 세태가 많다. 스님께서는 항상 전도몽상을 여의고 세상을 바라보라고 강조하신다”며 “그러한 가르침에 맞게 계속 정진해 가겠다”고 비장한 어조로 소감을 피력했다.

강의에 대한 감동은 스님들에게도 이어졌다. 강화서 참선센터를 운영 중인 혜정 스님은 이번 벽암록대법회가 새로운 대중 수행 문화를 일으키는데 일조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혜정 스님은 “코로나 때문에 함께 정진하는 모습이 많이 사라져 안타깝다”며 “불교의 핵심은 어쨌든 수행이라고 생각한다. 처한 환경은 어렵지만 우리 불자들부터 수행의 힘으로 스스로 돌아보며 차분히 정리됐으면 한다. 이번 법회가 그런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그 바람을 전했다. 이번 강설을 함께 진행한 원순 스님은 “십수년간 대중 앞에 나서지 않으셨던 현기 선사께서 벽암록으로 강연하시는 것은 벽암록이 지닌 의미를 세세하게 풀어 대중들의 수행을 돕기 위해서”라며 “간화선 공부에 대한 사부대중의 갈증을 해소하고 더 나아가 선풍을 불러일으키는 기회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무설전 왼쪽편에 앉은 재가자 50여 명이 공부하는 모습.무설전 왼쪽편에 앉은 재가자 50여 명이 공부하는 모습.

한편, 강화 전등사는 이번 현기대선사 벽암록 전등대법회에 이어 간화선 선풍을 확산시키기 위한 노력을 지속적으로 이어갈 예정이다. 삼고초려로 현기 대선사를 모셔와 이번 대법회를 총 기획한 전등사 주지 여암 스님은 “이번 법문 내용을 수록한 벽암록 해설집을 발간할 예정이며, 아울러 시민선방 운영도 추진 중에 있다”며 “현기 큰 스님께서 허락만 하신다면 이번 법회와 같은 귀중한 기회를 자주 만들고 싶다”고 바램을 피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