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불교신문이 만난 사람] 윤범모 국립현대미술관장 - 불교신문 2022. 6.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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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전등사 댓글 0건 조회 553회 작성일 22-06-21 08:14본문
“예술이란 그릇 안에 佛法 담아 젊은 세대에 전달”
예술에는 ‘창의성’ 포함돼야
8세기 미술 매몰되지 말고
21세기 시대정신 담아내길
토목공사 대변되는 불사 말고
음악 미술 문학 인재 불사로
창작물로 현대인과 소통해야
사찰에 미술관 지어 교류하고
새로운 시도 할 수 있게 지원
도전 없인 걸작 만들 수 없어
국립현대미술관새로운 50년을 준비하고 있는 윤범모 관장을 6월8일 종로 소격동 집무실에서 만났다. 윤 관장 왼편으로 보이는 책들은 그 임기 중 출간한 도록들이다. 책꽂이에 가득한 책들이 해마다 서울, 과천, 덕수궁과 청주관에서 다양한 전시를 통해 대중과 소통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지난 2월 국립현대미술관(이하 MMCA) 관장 연임에 성공하며 미술계에 새로운 역사를 써내려간 윤범모 관장을 6월8일 종로구 집무실에서 만났다. 그는 2019년부터 MMCA 관장을 맡아 미술관 개관 50년을 정리했고, 지난해에는 이건희 컬렉션 1488점을 기증받아 특별전으로 관람객 25만 명을 유치하는 등 남다른 성과를 보여줬다. 일찍이 평론가로서 남다른 식견을 보여줬던 윤 관장은 근현대 불교미술의 가치와 의미를 역설하며, 우리에게 잊혔던 제5교구본사 법주사 미륵불상을 만든 김복진 조각가와 나혜석 작가 등을 재조명하는데 기여하기도 했다. MMCA 미래 50년을 준비하기 위해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는 윤 관장을 만나 MMCA 현대불교미술의 방향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윤범모 관장은 근현대한국미술 연구의 독보적인 존재다. 한국근현대미술사학회 초대학회장을 맡아 근현대 미술의 가치를 알렸고, 근현대 불교미술을 연구할라치면 윤 관장의 논문과 저서를 반드시 읽어야 할 정도로 성과를 이뤘다. 신라, 고려시대 미술을 최고로 치는 한국미술사학계에서 윤 관장은 왜 근현대미술에 눈을 돌렸을까. 그는 ‘시대정신’이라고 답했다.
“한국미술사를 공부해보니 시대가 올라갈수록 화려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조선시대보다 신라시대 미술이 뛰어나다고 여기니 근대기 미술은 관심 밖이었다. 각광받는 장르와 양식의 차이만 있을 뿐 어느 시대나 미술은 생산되고 소비돼 왔다. 그 시대 정체성을 담고 있는데 이를 간과하고, 암흑기 격동기라 불리며 소홀했던 근현대 미술자료를 모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작가가 생존해 있으나 하나둘 씩 세상을 떠나고, 유족들마저 흩어지던 때라 서둘러 수집에 나섰다. 근대미술사학회도 그렇게도 만들었다.”
처음 학회를 만들 때는 서양미술사 전공자들로부터 적지 않은 야유를 받았다. 우리나라 근현대 미술이 학문이 되냐는 냉소적인 반응이라, 초창기에는 연구자들에게 논문을 써달라고 애걸해야 할 정도였다. 학회장을 맡을 사람도 없어 윤 관장은 의도하지 않게 장기집권까지 했다. “국내 서양미술 전공자들이 국외에서 활동이 어렵고 국내를 활동무대로 삼으면서 우리나라 근현대 미술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지금은 근대미술 전공자도 많고 좋은 논문도 많이 나온다. 해외에서도 우리 근현대 미술을 주제로 한 학위논문이 많이 나오는 추세인데, 1980년대 미술운동이 세계에서 유래를 찾기 어렵기 때문에 관심이 매우 높다.”
1980년대 미술계가 소그룹 운동으로 활발했던 반면, 전국사찰에서는 토목공사로 대변되는 대규모 불사가 진행됐다. 경제가 좋아져 불사는 활발했지만, 불교 건축과 불화, 불상에서 미술활동을 찾기는 어렵다고 윤 관장은 말했다. “예술이란 말 속에는 창의성이 포함돼 있는데, 이 시기 사찰불사에서 창의성 담겨있는지 의문이다. 엄밀히 말하면 불사의 시대지 미술의 시대라고 할 수 없다.”
불교계가 불사를 통해 전통을 답습하고 있을 때 일반 미술작가들은 불교를 소재로 작품 활동을 하고 있었다. 윤 관장은 2002년 불교문화사업단이 개최한 ‘아름다움과 깨달음-한국근현대미술에 나타난 불교사상’ 전시를 기획하면서 불교계가 미처 알지 못한 작가들과 작품을 발굴했다. 그는 “그 전시의 키워드는 궁극적으로 ‘깨달음’으로, 일반인은 깨달음이 무슨 의미인지 잘 와 닿지 않으니까 아름다움을 넣어 깨달음을 전달하려고 했다”며 답습이 아닌 창의성을 비중에 두고, 이전까지 시도조차 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당시 전시는 성공적이었다.
그는 “시주하는 사람들이 옛날방식의 탑상을 만들어야 그게 진짜라는 생각을 바꿔야 한다”고 지적하며 “21세기 미술에는 21세기 시대정신을 담아야하는데 왜 8세기에만 매몰돼 있는지 안타깝다”고 말했다.
그는 미술에는 창의성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예전에 조계종에 불교문화예술진흥위원회를 만들어 각 장르별로 매년 역량 있는 작가를 선정해서 창작기금을 후원하면 좋겠다고 제안한 적이 있다. 포교적인 측면에서 보면 건물 하나 짓는 것보다 인재 한 명을 양성하는 게 더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서 지금까지 50년이 흘렀다고 가정하면, 그 안에서 불교적 BTS나 오징어게임 같은 작품이 충분히 나왔을 것이다. 그러면 경제적으로 훨씬 이득이다.”
원효스님을 좋아한다는 윤 관장은 “유감스럽게도 우리 시대에 원효스님을 주인공으로 한 장편소설, 뮤지컬, 오페라 등 제대로 된 창작물 한 편이 없다”며 아쉬움을 전했다. 원효스님이 무애가를 짓고 동네 꼬마들과 춤을 추고 노래했던 것을 떠올려보자. 심오한 철학을 쉬운 노래말로 전한 것이 바로 진정한 예술가이고 시대정신인 것이다. 그는 “법회를 100번 하는 것보다 창작품 하나가 더 큰 감동을 주기 때문에 예술이라는 그릇을 탄탄하게 만들어 그 그릇에 불법을 담아 젊은 세대에 전달해야 한다”며 “그래야 관심을 갖고 감동을 받지, 생경한 단어로 법문하면 어떤 젊은이들이 불교에 관심을 갖겠냐”고 반문했다.
그는 사찰에 법당 말고 미술관을 짓는다면 포교 측면에서 효과가 클 것이라고 확신했다. 우선 젊은 사람들이 찾아올 계기가 마련되기 때문이다. 시대와 같이 간다는 측면에서 윤 관장은 강화 전등사에 주목했다. 전등사는 사찰에서 매년 현대미술전을 열고, 일반 작가의 작품을 구매한다. 윤 관장이 직접 기획해 현대적 감각으로 지은 전등사 무설전을 보면 그가 얘기하는 창의성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무설전 본존불은 광화문 세종대왕상을 제작한 김영원 작가가 조각했고, 오원배 동국대 교수가 프레스코 기법으로 불화를 완성했다. 매립등은 이정교 홍익대 교수가 설치해 전통적인 법당과는 차별된다. 그는 “시대의 정체성을 반영하는 게 중요하다”며 “새로운 시도가 없으면 걸작도 나오지 않는다”고 피력했다.
윤 관장은 한 불모(佛母)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한 불모가 말년에 자기가 만든 불상을 깨버렸다. 깨닫지도 못한 내가 어떻게 깨달은 부처님의 모습을 만들 수 있나, 내가 만든 불상은 가짜라고 생각해 부순 것인데 지금 불상 만드는 사람들이 한번쯤 생각해볼만한 이야기이다. 과연 겉모습만 비슷하게 만든다고 불상인지 돌아보고, 작가의 절실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지 생각해야 할 때”라고 했다.
지금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는 우리나라 채색화를 재조명하는 ‘색의 찬미’ 특별전을 열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조계종 성파 종정예하의 옻칠 민화도 볼 수 있다. 윤 관장은 “고구려 고분벽화나 고려불화가 말해주듯 우리나라 회화의 근본은 채색화였고 고려불화의 기교와 아름다움은 섬려하다고 표현했다”며 “특히 사찰은 화승 집단을 중심으로 단청과 불화로 채색의 전통을 계승해왔다”고 평가했다. 특히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전반에 집중적으로 민화가 그려진 것은 국망 시대 사찰경제가 피폐해지면서 화승들이 민화를 그려 포교를 하고 사찰경제를 유지했다는 게 윤 관장의 견해다. 그는 9월25일까지 이어지는 ‘색의 찬미’ 특별전에 스님과 불자들의 관람을 기대하며, 불교미술이 시대정신을 담을 수 있도록 변화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희망했다.
출처 : 불교신문(http://www.ibulgy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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