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지스님 8월 초하루 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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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전등사 댓글 0건 조회 2,336회 작성일 19-08-30 15:49본문
코앞으로 가을이 다가왔습니다. 며칠 전 만해도 더웠는데 오늘은 가을의 쌀쌀함이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오늘 주제는 지난번에 이어서 윤회(輪廻)입니다. 윤회(輪廻)는 내가 하는 것이지 부모님이나 다른 사람이 날 윤회(輪廻)시키는 것이 아닙니다. 12인연(因緣) 중 무명(無明)이란 말이 있습니다. 무명(無明)이란 여러 상태가 있는데 세상이 암흑처럼 어두워 아무것도 안보여도, 세상이 밝아도 내가 잠들어있으면 그것 또한 무명(無明)입니다.
한 생명체가 탄생을 하려면 무엇이 필요하죠? 의식주가 있어야 합니다. 이 세상 모든 생명체가 탄생을 하려면 의식주가 있어야합니다. 변소에 변이 넘치면 구더기가 생기고, 열매가 무르익으면 벌레가 생기듯 모든 존재는 의식주가 충분히 갖추어졌을 때 태어납니다. 살기 위해 태어나기 때문입니다. 어머니 뱃속의 아이는 누가 태어나게 한 것일까요? 어머니일까요 아이일까요. 바로 내가 어머니 배속에서 태어나는 겁니다. 그 안에 의식주가 있기에 내가 선택해서 들어간 것이고 더 있으면 죽기 때문에 내가 나오는 것이지요. 우리가 세상에 나온 이후 부모님을 위해 살아가는 적은 없습니다. 오로지 자기 자신을 위해 살아갑니다. 또 살아가다 보면 부부의 연을 맺게 됩니다. 결혼은 누굴 위한 것일까요? 바로 날 위한 것입니다. 오늘 오신 분들 중에 상대방을 위해서 결혼을 하신 분계신가요? 상대방을 위해 장가를 가고 반대로 시집을 가신 분이 계신가요? 본인을 위해서 결혼을 한 것이지요? 그렇게 가정을 꾸리고 나서 남편이 직장에서 돈을 벌어다주는 것 또한 처자식을 위함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위해서입니다. 왜 자신을 위하는 것이냐? 자기 부인이나 아들딸이 불행하면 자신도 불행하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부인이 남편위해서 아들 딸 위해서 밥을 해주고 가사 일을 하는 것 또한 자기 자신을 위한 것입니다. 자신을 위해 한 것이란 것만 알아도 부부싸움이 줄어들고 그 내용도 달라 지게 됩니다. 가족을 부양하는 것이 나를 위한 것이 아니라 생각하면 상대방의 부족함만을 찾고 탓하게 됩니다. 이 세상에 남자입장에서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인가 하면 바로 여성입니다. 반대로 여성 입장에서도 가장 중요한 존재가 남성입니다. 의식주가 아닙니다. 그렇게 소중한 존재 중에서도 가장 소중한 한명을 골라 부부의 연을 맺는 것이 결혼인데 우리는 살다보면 상대방의 소중함을 잊고 실수를 하곤 합니다. 자식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부모는 자식을 위해 자식을 낳은 것이 아니고 자식 또한 부모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니 서로를 탓하고 부족함을 지적하면 안 될 것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하면 잘살 것인지가 아니라 잘 죽는 것에 대해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 세상 모든 존재는 수명을 가지고 태어나는데 하루살이는 하루, 개구리 7년, 개 20년, 소 40년 각각의 수명을 가지고 태어납니다. 우리는 100년을 이 세상에서 살고 가는데 어떻게 해야 잘 살고 죽을까? 편안하게 죽을까? 다른 이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죽을까? 생각하고 노력하는 것이 아름다운 삶이라 할 수 있습니다. 죽을 때가 다 된 부모님이 어떻게든 살려하고 죽기 싫어하면 그 것을 보는 자식들은 너무나 안타까워하고 속에서 피눈물을 흘리게 됩니다. 여기 계신 분들께서는 그러지 마세요. 소임을 다하고 잘 가는 것이 좋은 것입니다. 우리에겐 다음 생이 또 있습니다. 다음 생에 어떻게 태어나 어떻게 살 것인가 또한 준비해야 합니다.
우리가 살면서 잠을 잘 때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 것은 다음 날이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우리 불자님들도 열심히 수행을 하면 무명(無明)이 타파가 됩니다. 내가 왜 태어났고 왜 죽고 어디에 죽을 것인가를 알게 됩니다. 우리는 부모님이 살아생전 아무리 잘해도 임종을 못 지키면 불효자식이라고 합니다. 왜 불효자식이라 할까요? 어린애가 엄마가 없으면 밥도 못 먹고 울고불고 하듯 우리도 죽을 때 똑같습니다. 어디로 갈지 모르기에 불안하고 두렵고 안절부절 하는데 그럴 때 가족들 혹은 지인들이 곁에 있으면 안심이 됩니다. 그래서 임종 때 곁을 지켜주어야 합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자기 자신을 관찰하지 않으면 어떻게 살지를 알 수가 없습니다. 자기가 잘못을 하고 자기를 위해 살아놓고 남 탓을 하게 됩니다. 유명한 말 중에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난다는 말이 있죠? 스님이 절이 싫다는 것은 그 절의 환경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겠지요. 그렇다면 본인이 떠나야 하는 것이에요. ‘진흙에 물들지 않는 연꽃처럼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처럼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는 말이 있습니다. 우린 늘 외롭고 쓸쓸하고 고독하고 또 늘 손님처럼 살아야 합니다. 고작 100년 동안 이 몸으로 살다 가기에 늘 손님으로 살아야 하는데 이를 불교에선 ‘객으로 살아라.’ 라고 가르칩니다. 이 세상을 살다 가면서 이 세상 모든 존재에게 악영향을 끼치면 안 됩니다. 이를 악업이라고 하는데 반대는 선행이라고 합니다. 선행의 첫째는 5계(五戒), 10계(十戒)를 지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 전등사 불자님들은 자기 자신을 관찰을 해서 이 세상을 지혜롭게 살아가야 합니다. 요즘 들어 자살이 많은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는데 불교에서는 자살이라는 말이 없습니다. 우리가 죽으려 해도 몸에선 고통을 느끼고 이를 거부하게 됩니다. 어릴 적에 불에 데 인 사람은 이를 기억해 불을 두려워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몸에 고통을 주고 나쁜 선택을 하게 되면 그 고통을 다시 겪게 됩니다. 윤회(輪廻)의 굴레에서 영원히 벗어나는 불자님들이 되길 바라며 오늘 법문을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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