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랑성, 전등사, 대웅전 나녀상…역사 체험 > 언론속전등사

본문 바로가기
언론속전등사
참여마당 언론속전등사

5sub533 삼랑성, 전등사, 대웅전 나녀상…역사 체험

페이지 정보

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1,694회 작성일 17-03-09 13:51

본문

삼랑성, 전등사, 대웅전 나녀상…역사 체험

유철상의 가족여행 <74>강화도 전등사와 나녀상 

기사입력2017-03-06 15:43
유철상 객원 기자 (poetry77@naver.com)

강화도의 주봉 마니산의 한 줄기가 서쪽으로 뻗어 다시 세 봉우리로 솟아오르는데, 이 산이 마치 세발 달린 가마솥과 같다 해서 생긴 이름이 정족산이다. 정족산에는 단군의 세 아들이 한 봉우리씩 맡아 쌓았다는 삼랑성이 있고 그 삼랑성의 품안에 전등사가 있다.

 

전등사 대웅전<사진=상상출판>

 삼랑성을 울타리로 남문루와 동문지, 서문지, 북문지를 입구로 삼고 있는 전등사는 고구려 소수림왕 11(372)에 아도화상이 진종사라는 이름으로 창건했다고 전해진다. 전등사라는 이름은 고려 충렬왕 8(1282)에 그의 비인 정화궁주가 인기스님을 통해 송나라의 대장경을 가져다가 보관하고 절에 옥등을 시주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원나라에 가서 원세조의 딸인 제국공주와 결혼을 하고 아버지인 원종이 죽은 뒤 돌아온 충렬왕은 다시 정화궁주를 비로 맞아들였다. 정화궁주는 제국공주의 시기와 모함에 의해 왕의 총애를 빼앗기고 옥에 갇히기도 하는 한편, 아들마저 유폐를 당하는 시련을 겪게 된다. 이에 의지할 곳 없는 마음을 이곳 전등사에서 달랬다고 한다.

   

대웅전 나녀상<사진=상상출판>

 전등사는 무엇보다도 보물 제178호로 지정된 대웅전의 아름다움이 돋보인다. 이곳에는 사람인 듯 원숭이인 듯한 살색의 나무 조각상이 네 귀퉁이의 처마를 받들고 있다. 나녀상이라 일컬어지는 이 목상에는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가 하나 있다처음 사찰을 건립할 때 공사를 맡았던 도편수는 아랫마을 주모와 정을 나누었다. 불사가 끝나면 부부의 연을 맺기로 약속한 도편수는 불사에만 전념했는데, 완공을 얼마 앞둔 어느 날 기다리다 못한 여인은 도편수의 돈을 모두 챙겨 다른 남자와 도망을 가고야 말았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도편수는 무슨 뜻에선지 네 개의 나녀상을 깎아 대웅전의 귀공포마다 하나씩 달아놓았다. 속세에서 지은 죄를 뉘우치고 무거운 처마를 받들며 부처님의 설법을 듣고 개과천선하라는 뜻이 담겨 있다고 한다.

전등사는 공을 들여 살펴봐야할 것들이 많다. 보물로 지정된 약사전과 중국에서 만들어진 철제 종, 입구의 누각인 대조루가 유명하다. 대조루는 아침저녁으로 해가 뜨고 지는 풍경을 감상하거나 서해바다를 관망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곳이다. 선원보각은 왕실의 족보를 보관했던 건물이고, 장사각은 조선왕조실록의 사고였으나 이 두 건물은 소실되었다가 새 건물로 복원되어 있다.

 숲길을 따라 걸으며 새 소리도 들어보고 외규장각에 보관하던 정족산 사고까지 가볍게 산책한다. 안개가 온통 사위를 감싼 자연의 품 안에 고즈넉이 안긴 절에서 명상에 잠겨보면 금세 일상을 훌훌 털어낼 수 있지 않을까.[유철상 상상출판 대표]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밴드 보내기
  • 블로그 보내기
  • 카카오스토리 보내기
  • 텔레그램 보내기
  • 텀블러 보내기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X



회원로그인


(우:23050) 인천광역시 강화군 전등사로 37-41
종무소 : 032-937-0125 팩스 : 032-232-5450
템플스테이 사무국 : 032-937-0152
COPYRIGHT 2006 전등사 ALL RIGHTS RESERVED.
그누보드5
(우:23050) 인천광역시 강화군 전등사로 37-41 종무소 : 032-937-0125 팩스 : 032-232-5450 템플스테이 사무국 : 032-937-0152
COPYRIGHT ⓒ 2005~2022 전등사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