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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sub533 2014-12-16 발가벗은 여인이 법당지붕 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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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2,137회 작성일 14-12-30 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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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강화 전등사 대웅보전벌거벗은 여인이 법당 지붕 떠받치고 있는 까닭은
신대현 박사 | buam091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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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4.12.16 10:5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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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설은 흥미롭지만 종종 현실을 비껴가고, 기록은 생생하지만 대개 상상력이 부족하다. 전등사 대웅보전은 역사와 전설이 공존하는 자리이다.

우리 역사에서 가장 큰 환란은 끊이지 않았던 외세의 침략일 것이다. 강화도는 바다를 사이에 두고 있어 왕조가 외세에 버티는 최후의 보루 노릇을 했다. 한편으론 그만큼 외적의 침략 앞에 그대로 노출되었던 곳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등사(傳燈寺) 같은 명찰이 온전히 전하고 있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전등사의 여러 건물들은 충실한 중건과 수리에 힘입어 오늘날에도 그 원형이 대부분 보존되고 또 다른 많은 유물들도 전해와 역사의 보고 역할을 단단히 해내고 있다. 그 중에도 대웅보전은 조선시대 중기에 지은 유서 깊은 건물인데 앞으로 보나 옆으로 보나 이처럼 멋있고 아름다운 건물을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1621년 조성된 빼어난 건축
처마 4곳에 나부상 조각 특징
공사 총책임 맡았던 도편수가
배반한 여인 새겼다고 전해져
실제로는 원숭이일 가능성 커

법당 안 수미단·닫집도 일품
기둥과 벽에 쓰여진 이름들은
적과 맞서 싸우던 관군들 흔적


1916년 수리 때 발견된 상량문에 1621년에 지었다고 나오니 이 대웅보전에는 400년에 걸친 세월의 무게가 얹혀 있는 것이다. 건축미도 빼어나고 역사도 오래된 데다, 여기에 더해 옛날 사람들이 속삭였던 전설까지 담겨져 있으니 문화적으로 여간 소중한 게 아니다. 불상이 모셔진 금당이지만, 설령 저잣거리에서 주고받는 이야기의 소재가 되었다고 해서 불경(不敬)하다고 볼 필요는 없다. 절이란 모든 사람 가리지 않고 껴안고 보듬으며 깨달음으로 나가도록 등을 도닥여 주는 곳이지 않은가.

먼저 이 건물의 양식을 한 번 살펴보자. 기단은 땅의 높낮이에 맞추어 동쪽이 높고 후면과 서쪽이 낮은 자연석 허튼층쌓기를 하였고, 그 위에 앞면과 옆면 모두 3칸씩의 기둥을 올렸다. 기둥은 아래 위보다 중간이 불룩하게 나온 이른바 엔타시스 형식을 하고 있는데 우리말로는 배흘림기둥이라고 한다. 출입문은 세 짝으로 낸 삼분합(三分閤)에 궁창판이 있는 빗살문을 달았는데, 두 짝을 열어 겹쳐 들어 올려 처마에 박아놓은 들쇠에 걸도록 되어 있다. 말하자면 문을 좌우로 열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필요에 따라서는 위로 쑥 들어 올릴 수도 있도록 한 것인데, 보다 많은 햇빛이 필요하거나 바람이 시원하게 들고나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전등사는 산의 7부 능선이나 정상 가까이 자리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아무래도 햇볕이 넉넉하게 들어오지 않고 또 바람의 들고 남도 조금 부족한 것을 보완하려는 고안이었을 것이다.

대웅보전 외부에서 가장 눈길이 가는 곳은 단연 처마 아래 네 귀퉁이에 지붕을 떠받치고 있는 인물상이다. 사람들은 이를 벌거벗은 여인의 모습이라 하여 나부상(裸婦像)이라고 불렀다. 그나저나 해괴하게도 어떻게 금당 건물에 벌거벗은 여인네를 조각하였을까. 여기에는 전설이 전한다. 언젠가 대웅보전을 중건할 때의 일이다. 공사의 총책임자인 도편수가 우연히 마을에 내려갔다가 주막의 주모와 가깝게 지내게 되었다. 그러다가 서로 사랑을 하게 되었고, 급기야 장래를 약속하는 사이가 되었다. 도편수는 공사가 끝나면 그 여인과 살림을 차릴 생각을 하고는 자기가 갖고 있는 공사비를 모두 그 여인에게 맡겼다. 그러나 공사가 채 끝나기 전 그 여인은 마음이 변해 도편수의 돈을 갖고 다른 남자와 도망쳐 버렸다. 이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도편수는 실의에 빠져 한 동안 공사를 진행하지 못하다가 마음을 다잡고 겨우 공사를 마무리하였다. 하지만 자신을 배신한 여인을 용서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대웅보전의 네 귀퉁이마다 그 여인의 벗은 몸을 조각해 무거운 지붕을 떠받들게 했다. 그럼으로써 자신이 할 수 있는 방법대로 그 여인에게 벌을 내린 것이었다.

▲ 대웅보전 처마에 새겨진 나부상.

이 조각상이 얼마나 유명한지 고은 시인의 ‘전등사’ 시에도 등장한다.

‘강화 전등사는 / 거기 잘 있사옵니다 / 옛날 도편수께서 / 딴 사내와 달아난 / 온수리 술집 애인을 새겨 / 냅다 대웅전 추녀 끝에 새겨놓고 / 네 이년 세세생생 / 이렇게 벌받으라고 한 / 그 저주가 / 어느덧 하이얀 사랑으로 바뀌어 / 흐드러진 갈대꽃 바람 가운데 / 까르르 까르르 / 서로 웃어대는 사랑으로 바뀌어 / 거기 잘 있사옵니다’

시인의 감수성이 그야말로 무릎을 탁 칠만큼 흥미롭게 표현되었다. 전설이 아름다운 시 한 편을 만들어 낸 것이다. 다만 이 조각이 정말 전설대로 도편수가 벌주려 했던 여인일까? 그렇지는 않을 것 같다. 이 상이 두 손을 들어 지붕을 받치는 모습이라 너무 힘들어 보이므로 언제부터인가 그럴듯하게 상황을 만들어서 지어낸 이야기일 가능성이 아주 높다. 나부상이 아니라면 과연 무엇인가? 이것을 괴상(怪像)이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다. 아마도 사천왕상이 밟고 있는 악귀를 일명 귀상 또는 괴상이라 한 데서 착안한 것인 듯하다. 나름대로 일리 있는 표현이기는 하지만 우선 ‘괴상’이라는 발음이 도통 좋지 않고 또 악귀를 이렇게 법당의 처마 아래에 올려놓는 것도 곰곰이 생각해보면 전각에 어울리는 게 아니라 썩 그런 것 같지 않다.

그보다 원숭이를 나타낸 것이라는 설명이 좀 더 그럴듯하게 들린다. 불경에 보면 부처의 전생 가운데 흰 원숭이(白猿)였던 적이 있다고 나오는데, 이 흰 원숭이를 조각한 것으로 보는 것이다. 나부상이나 괴상이라고 말하는 것보다 훨씬 그럴 듯하고, 법당에 장식한 것도 충분히 이해될 만하다. 그리고 중국의 사찰에도 더러 이것과 아주 닮은 조각이 같은 위치에 있다고도 한다. 또 실제로 전각이나 궁전의 지붕 처마 위에 삼장법사와 손오공 등 ‘서유기’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을 올려놓은 이른바 잡상(雜像)이 흔히 보이고 있어 이 주장에 힘을 실어 준다.

2004년 3월 공연장이 모여 있는 서울 대학로의 한 연극 무대에서 ‘나부상전(裸婦像傳)’이라는 이름의 공연이 있었다. 말할 것도 없이 전등사 대웅보전의 나부상을 소재로 한 연극이었다. 이 전설이 예술가에게 영감을 불러일으키기에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소재거리가 되어 우리가 좋은 작품을 관람할 수 있다면 그것 역시 의미 있는 일이다. 하지만 우리가 전등사 대웅보전 앞에 섰을 때 보는 조각이 지니는 상징의 진실은 확실히 알아둘 필요가 있다. 다만 이에 대한 해결은 반드시 관련 학자들에 의해서만 풀릴 것이 아니므로 전등사를 찾는 이들 모두 한 번쯤 수수께끼를 풀어보는 것도 괜찮을 듯싶다.

대웅보전 안에는 ‘건축 속의 건축’ 수미단과 닫집이 있는데 이들 역시 그 솜씨가 보통 뛰어난 게 아니라서 대웅보전의 가치를 더욱 높여주고 있다. 특히 불상의 대좌격인 수미단(須彌壇)은 17세기의 걸작 반열에 놓을 만큼 훌륭하다. 전각마다 수미단이 갖추어져는 있으나 모양과 크기가 저마다 다른데 그 주된 이유는 수미단 만드는데 솜씨와 공력이 보기보다 많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전등사 대웅보전의 수미단은 그 아름다움 면에서 우리나라 사찰의 수미단 가운데 최상급 몇 개 안에 꼽힌다. 경상북도 영천 백흥암, 포항 오어사, 경상남도 창녕 관룡사 등이 멋진 조각이 가미된 수미단을 지닌 사찰들인데, 전등사 수미단은 이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작품이다.

대웅보전 수미단은 상중하 3단으로 이루어져 있다. 맨 아랫단의 각 칸마다에는 도깨비 얼굴을 새겨 넣었다. 그런데 근래에 와서는 이 도깨비는 도깨비가 아니라 용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절집에서 도깨비를 수미단 같은 중요한 장엄의 한 장식으로 쓴다는 게 이치에 맞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용은 불교를 옹위하는 상서로운 동물이므로 불교미술에서 다양하게 표현되고 있기는 하다. 그러고 보면 아닌 게 아니라 용하고 꽤 닮은 것도 같다. 가운데 단에는 새와 연꽃·영지(靈芝)·당초·보상화 등의 상서로운 식물을 새겨 넣었고, 맨 윗단에도 역시 가지각색의 꽃과 풀을 넣어 아름답게 장식하였다. 1621년에 만들었다는 기록도 있으니 자료 가치 면에서도 중요하다.

대웅보전 안을 둘러보다 보면 불상 앞 기둥과 벽에 여기저기 써 놓은 먹 글씨가 눈에 띤다. 사연을 모르는 사람들은 마치 유명한 계곡의 바위마다 나 왔다 갔노라고 자기 이름을 새기거나 먹으로 쓴 것을 여기서도 보는구나 싶어 눈썹을 찌푸리기 십상이다. 하지만 대웅보전 기둥에 쓰여 있는 글씨는 그런 유치한 행동과는 전혀 격을 달리한다. 이 글씨들은 내용 면에서 두 가지 종류로 나눠진다. 하나는 단순하게 이름만 적은 것으로 투박하고 거친 필체로 몇 사람씩의 이름이 한데 모여 쓰여 있다. 이는 신미양요와 병인양요 때 강화를 지키던 병사들이 남긴 것이다.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한 강화도 정족산의 사고(史庫)를 지키기 위해 양헌수(梁憲洙) 장군이 거느린 관군이 전등사에 모였는데, 그들은 자신들이 언제 죽을지 몰라 두렵고 절박한 마음으로 여기에 이름을 쓴 것이다. 이들이 쓴 건 낙서가 아니라 자신의 안위를 부처님께 기원하고, 만일 전사한다면 극락왕생을 빈 간절한 기원이었다. 대웅보전 기둥은 귀목나무다. 귀목은 천 년이 간다는 나무로, 여기에 이름을 쓴 것은 바로 귀목의 영험을 나눠 받기 위한 소박한 몸짓이었던 것이다. 또 하나는 이름 앞에 ‘동유(同遊)’라는 단어가 붙은 종류다. 뜻은 글자 그대로 해석하여 ‘함께 놀러온’ 정도로만 생각했는데, 최근 전등사에서는 동유는 특별하게 모임을 만들어 사찰을 찾아가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용어라고 추정한다. 그럴 듯한 설명같다.

▲ 전등사 전경.

전설은 흥미롭지만 종종 현실을 비껴가고, 기록은 생생하지만 대개 상상력이 부족하다. 전설과 기록은 서로 맞서는 상대가 아니라 상호 보완적인 것이어서 풍부한 역사 구성을 원한다면 이 둘의 접점을 찾으려고 노력해야 한다. 전등사 대웅보전은 역사인 동시에 전설이다. 역사와 전설이 서로를 보완해주고 있으니 얼마나 소중한 문화재인가.

신대현 사찰문화연구원 대표 buam091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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