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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국가유산 보물로 지정된 전등사 대웅전 [인천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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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전등사 댓글 0건 조회 185회 작성일 25-02-07 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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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건축물 중요 연구자료
1615년(광해군 7) 기공 1621년 준공


인천투데이=박길상 기자 | 62년 전 오늘, 1963년 1월 21일, 강화도 전등사 대웅전이 보물로 지정됐다.

전등사 대웅전은 석가여래삼존불이 있는 조선 중기 건축물이다. 1605년(선조 38)과 1614년(광해군 6)에 큰불이 나 절이 모두 타버렸다. 그 이듬해 다시 짓기 시작해 1621년(광해군 13)에 준공했다.

1839년(헌종 5), 1855년(철종 6), 1876년(고종 13)에 중수하고 이후에도 여러 차례 수리가 이루어졌으나 큰 변화 없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전등사 대웅전(출처 인천투데이 자료사진)
전등사 대웅전(출처 인천투데이 자료사진)

 
앞면 3칸 옆면 3칸 팔작지붕...다포식

대웅전 건물은 앞면 3칸 옆면 3칸이다.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 건물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한 공포가 기둥 위뿐만 아니라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식이다.

네 모서리 기둥 윗부분에 사람 모습을 조각해 놓았는데, 이것은 공사를 맡았던 도편수(건축 총책임자. 목수 우두머리)의 재물을 가로챈 전등사 앞 주막 주모의 모습이라는 전설이 전해져 오고 있다.

도편수는 공사가 끝나면 주모와 살림을 차릴 생각에 공사 노임을 모두 여인에게 맡겼다. 그러나 공사가 끝나갈 무렵 주모는 달아나버렸다는 얘기다.

여인에게 재물 뺏긴 도편수 전설 전해져

재물을 잃은 도편수가 주모의 나쁜 짓을 경고하고 벌주려 발가벗은 모습을 조각해 무거운 추녀를 받치게 했다는 것이다.

대웅전 나부상. 왼쪽부터 정면 동쪽, 뒷면 동쪽, 정면 서쪽, 뒷면 서쪽(출처 인천투데이 자료사진)
대웅전 나부상. 왼쪽부터 정면 동쪽, 뒷면 동쪽, 정면 서쪽, 뒷면 서쪽(출처 인천투데이 자료사진)

흥미로운 것은 3곳 처마 밑에서는 두 손으로 처마를 받치며 벌을 받는 모양인데, 한 귀퉁이는 한 손으로만 처마를 받치고 있다.

마치 벌을 받으면서도 꾀를 부리고 있는 듯한 모습으로 선조의 재치와 익살을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조선시대 정족산사고를 지키는 중요 사찰

당시 능숙한 조각 솜씨를 엿볼 수 있고, 조선 중기 이후 건축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한편, 전등사는 381년(고구려 소수림왕 11) 아도화상이 세웠다고 전하지만 믿을 수 없다. 고려 말기 문신 목은 이색은 전등사가 충렬왕 왕비 정화궁주의 원찰(죽은 사람의 명복을 비는 절)이었다고 기록했다.

조선 후기에는 정족산성과 정족산사고를 지키는 임무를 지닌 중요한 사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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