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법의 등불 전해진 천년고찰서 욕심을 내려놓다 [법보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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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전등사 댓글 0건 조회 215회 작성일 24-12-24 10:09본문
33기도순례단, 12월 14일 현존 최고 사찰 전등사서 순례
단군 신화·법당 나부상·은행나무 전설에 깃든 가르침 새겨
용궁사 방생법회서 생명 존중 발원…1월 18일 금산사 순례

33기도순례단은 12월 14일 강화 전등사에서 제19차 기도순례를 이어갔다.
단군 신화와 깊은 연관이 있는 강화도에서 삼랑성은 단군의 세 아들 부소, 부우, 부여가 축조한 것으로 전해진다. 단군은 세 왕자에게 성 축조의 책임을 맡기며 “힘을 합쳐 훌륭한 성을 쌓으라”고 당부했고, 이에 세 왕자는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장정들과 함께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산성을 완성했다. 그 삼랑성은 강화도 정족산 산등성이를 따라 자리 잡고 있으며 동북쪽에 위치한 전등사의 동문과 남문은 삼랑성의 문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그 문을 지나자 한국불교에서 가장 오래된 현존 사찰 전등사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대웅보전 앞마당으로 올라서기 전 수령 500년을 넘긴 두 그루의 은행나무가 순례객을 먼저 맞이했다. ‘노승나무’와 ‘동승나무’로 불리는 암수 한 쌍이다. 열매를 맺지 않는 이 은행나무는 특별한 전설을 간직하고 있다.
조선 철종 시절, 전등사에 은행 스무 가마를 바치라는 관리의 무리한 요구가 내려왔다. 전등사 나무는 열 가마 정도의 열매만 맺었기에 이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노스님은 백련사의 도력 높은 추송 스님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추송 스님은 전등사로 와서 특별한 기도를 올렸고, 그 기도는 전등사 주변에 큰 소문을 일으켰다. 기도가 끝나는 날, 관리들의 눈은 갑자기 부어올랐고, 추송 스님은 “이제 이 나무는 더 이상 열매를 맺지 않을 것”이라 선언했다. 갑작스러운 폭우와 함께 세 명의 스님이 자취를 감췄고, 사람들은 이를 보살의 화신이라 믿게 되었다. 그 이후로 전등사의 은행나무는 열매를 맺지 않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그 문을 지나자 한국불교에서 가장 오래된 현존 사찰 전등사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대웅보전 앞마당으로 올라서기 전 수령 500년을 넘긴 두 그루의 은행나무가 순례객을 먼저 맞이했다. ‘노승나무’와 ‘동승나무’로 불리는 암수 한 쌍이다. 열매를 맺지 않는 이 은행나무는 특별한 전설을 간직하고 있다.
조선 철종 시절, 전등사에 은행 스무 가마를 바치라는 관리의 무리한 요구가 내려왔다. 전등사 나무는 열 가마 정도의 열매만 맺었기에 이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노스님은 백련사의 도력 높은 추송 스님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추송 스님은 전등사로 와서 특별한 기도를 올렸고, 그 기도는 전등사 주변에 큰 소문을 일으켰다. 기도가 끝나는 날, 관리들의 눈은 갑자기 부어올랐고, 추송 스님은 “이제 이 나무는 더 이상 열매를 맺지 않을 것”이라 선언했다. 갑작스러운 폭우와 함께 세 명의 스님이 자취를 감췄고, 사람들은 이를 보살의 화신이라 믿게 되었다. 그 이후로 전등사의 은행나무는 열매를 맺지 않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전등사 전경.
이 전설은 전등사의 신비로움을 더해주며 사람들에게 자연과 믿음의 소중함을 일깨워주는 교훈을 전한다.
매월 세 번째 토요일 법보신문 후원으로 전국 기도도량을 찾아 정진하는 33기도순례단이 12월 14일 강화 전등사 순례에 나섰다. 단군 신화가 전해지는 삼랑성을 지나 ‘노승나무’와 ‘동승나무’ 앞에서 “욕심을 내려놓겠노라” 다짐하며 법당으로 향한 순례단은 대웅보전 지붕을 떠받치는 나부상(裸婦像)에 눈길이 머물렀다.

매월 세 번째 토요일 법보신문 후원으로 전국 기도도량을 찾아 정진하는 33기도순례단이 12월 14일 강화 전등사 순례에 나섰다. 단군 신화가 전해지는 삼랑성을 지나 ‘노승나무’와 ‘동승나무’ 앞에서 “욕심을 내려놓겠노라” 다짐하며 법당으로 향한 순례단은 대웅보전 지붕을 떠받치는 나부상(裸婦像)에 눈길이 머물렀다.

순례단이 전등사 불사에 참여하고 있다.
나부상은 대웅보전 공사를 맡은 도편수가 고향을 떠나 사하촌의 주막 여인과 사랑에 빠졌지만, 그녀가 야반도주하면서 배신감을 느낀 후 분노를 담아 대웅보전 처마에 새겼다고 전해진다. 이 나부상들은 각기 다른 자세로 처마를 떠받치고 있다. 단죄와 참회의 의미, 그리고 부처님의 자비를 상기시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고 해석되며 전등사를 찾는 이들에게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를 준다. 나부상은 단순히 전설 속 이야기를 넘어 다양한 역사적, 문화적 해석을 담고 있어 귀중한 학문적 연구 대상이기도 하다. 이렇듯 다양한 관점은 전등사가 단순한 사찰을 넘어 역사적 기억과 문화적 상징이 혼합된 공간임을 보여준다.


전등사 주지 여암 스님.
대웅전 참배를 마친 순례단은 무설전에 자리잡았다. 기도에 앞서 전등사 주지 여암 스님은 “여러분이 법당에서 본 나부상은 삼독에 찌든 자신의 보습을 나타낸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불자님들은 항상 부처님께서 가르쳐 준 것이 무엇인가, 나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하는 생각을 오롯이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이렇게 순례를 하면서도 불자로서 어떻게 살 것인가를 화두 삼아 정진해야 신심도 다질 수 있습니다”라며 순례가 곧 정진의 시간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을 당부했다.

순례단은 석명 스님 지도에 따라 기도를 진행했다.
주지 스님의 당부와 축원을 들은 순례단은 석명 스님의 집전과 지도에 따라 마음을 다해 기도를 시작했다. 법의 등불이 전해지는 전등사에서 영하의 추위를 녹일 만큼 뜨거운 기도정진을 통해 업장을 녹이고 욕심을 내려놓으며 불자로 살아갈 것을 다짐한 순례단은 전등사를 뒤로하고 인천 용궁사로 향했다.
전등사에서 기도하며 자신을 돌아보고, 용궁사에서 방생법회를 통해 생명의 소중함을 다시한번 확인하고 생면 존중을 발원한 순례단은 다음 순례에서 만날 것을 다짐하며 제19차 기도순례를 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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