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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사찰로 알려진 전등사의 명소로 요즘 주목받고 있는 곳이 무설전(無說殿)이다. 신발을 벗지 않고 들어갈 수 있는 이 법당은 부처님을 만날 수 있는 상징공간과 참배, 문화와 예술이 살아 있는 화랑 3개 공간으로 구성됐다. |
무설전(無說殿) 앞에서 애 엄마가 물었다.
“무설전이 무슨 뜻이야?”
유모차를 밀고 가던 애 아빠가 대답했다.
“말 필요 없어, 가서 보면 되~~~.”
전등사(傳燈寺)는 아도화상에 의해서 세워진다. 그 때가 고구려 소수림왕 11년, 서기 381년이니, 지금부터 1633년 전이다. 아도화상은 진나라에 들어가서 불교를 공부하였다. 우리나라로 다시 돌아와서는 지금의 전등사 자리에 진종사(眞宗寺)라는 절을 세운다. 진종사가 우리나라 최초의 사찰인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기록과 유물이 현존하는 곳으로는 전등사가 가장 오래되었다.
그 후, 고려 왕비가 진종사에 옥등(玉燈)을 시주한 인연으로 진종사의 이름이 전등사로 바뀌게 된다. 진종사는 진종사대로 의미 있는 이름이었는데, 안타깝다. 하지만 어쩌랴! 진종사가 없어진 것도 아니고, 다만 이름이 전등사로 바뀌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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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등사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사찰로도 이름이 높지만, 역사적으로도 중요하다. 우선 전등사를 품고 있는 곳이 삼랑성이다. 삼랑성은 단군의 세 아들인 부여, 부우, 부소가 쌓았다고 해서 삼랑성(三郞城)이다. 오래된 고성(古城)의 원형을 잘 간직하고 있다고 한다.
단군 할아버지 시대에도 이곳은 중요한 공간이었나 보다. 그 후로도 고려 항몽, 국가중요문서를 보관했던 사고지, 병인양요, 일제강점기 의병투쟁까지, 나라의 크고 작은 굴곡에 전등사가 있었다.
무설전을 가봤다. ‘그림이 있는 법당’이라는 안내 문구가 사람들의 마음을 벌써 움직인다. 들어가는 입구의 모양도 이채롭다. 기존의 법당 입구와는 확연히 다르다. 외부의 공기를 빨아들이는 것 같기도 하고, 안에서 좋은 기운을 뿜어내는 모양 같기도 하다. 새롭다.
안으로 들어가는 방식도 쉽다. 그 앞에 서기만 하면 자동문이 저절로 열린다. 신발 신은채로 들어서면 된다. 신발을 벗고 법당 안에 들어서야만, 부처님을 만날 수 있는 어려움을 해소하였다. 부처님께 더 다가가려면, 정해지지 않은 아무 지점에서나, 가볍게, 신발을 벗고 한 뼘만 올라서면 바로 법당마루다. 문턱이 높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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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조성된 무설전이 ‘부처님 말씀과 하나 되어 신도들의 마음을 담는 법당’이라면 대웅전의 부처님과 북송 철종 4년(1097년)에 주조된 범종 등은 운무가 가득한 전등사에서 볼 수 있는 한국불교의 또 하나의 역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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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의 과정이 간단한 일인 것 같지만, 많은 것을 내려놓아야만 가능했을 것이다. 더 있다. 우선 부처님과 보살님들이 황금 옷을 입지 않으셨다. 중생들의 맘 편하라고 그러셨는지 흰색이다.
좌대도 간단하다. 금빛 방석도 없다. 눈높이도 우리들 눈높이에 맞춰주셨다. 나머지는 우리 몫이다. 우리 마음에 쓸데없는 권위의식이나 허상을 쫒는 어리석음은 없는지 살펴 볼일이다.
그림 얘기를 놓쳤다. 통로 겸 복도가 갤러리다. 예술을 귀하게 여기셨다는 서운스님의 뜻을 따르고자 ‘서운갤러리’라 이름 지었다. 법당을 그림이 있는 예술 공간으로 꾸며 놓으니, 종교가 다르거나 단지 관광객일지라도 법당을 구경할 수가 있다. 작은 인연이 큰 전환의 계기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묻고 싶은 것이 있었다.
“전통사찰에서 새로운 개념의 법당을 잘 지어 놓아도, 신도들이 오래된 대웅전을 고집하고, 새 법당에 잘 가지 않으려 한다. 이런 문제는 어떻게 해결 합니까?”
“사찰의 중요한 기도와 법회를 대부분 무설전에서 진행합니다. 특히 <금강경> 독송기도 법회를 비중 있게 진행하고 있는데, 이제는 새 법당을 좋아하는 신도님들이 많이 늘었습니다. 우선 공간이 넓고, 지하공간이라도 공기의 흐름이나 보온 등에 상당한 공을 들였기 때문에, 어떤 면에서는 새 법당이 법회를 하기에는 더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습니다. 또 각 가정의 원불(願佛)을 모시도록 권했고, 조상님들의 백년위패를 모셔서 수시로 기도할 수 있도록 배려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사람입니다. 기도하는 사람들이 정성을 다해서 기도 정진하면, 저절로 부처님도 영험한 부처님이 되는 것이고, 새 법당도 신령한 법당이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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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우리는 한국불교를 새롭게 해야 한다고 여기저기서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하지만 무엇을 새롭게 해야 할지, 잘 알면서도 알지 못한다. 잘 모를 때는 자세를 낮추고 남의 말을 잘 듣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전등사에는 삼랑성 역사문화 축제가 유명하다. 지방자치단체와 사찰이 함께 축제를 이끌어 간다. 삼랑성 축제라는 용어 속에 불교는 없어 보인다. 하지만 내용을 들여다보면 불교적 요소가 많다. 불교를 표면에 내세우지 않아도 충분히 불교적이다.
새로 지은 무설전도 새로운 개념을 받아들였다. 절에 오는 사람들 입장에서 불교를 쉽게 접할 수 있도록 자세를 낮춘 것이다. 불사를 진행할 때도 자연을 소중하게 생각한 흔적이 여기저기 보인다. 소나무 한 그루를 살리기 위해 집의 방향을 다시 정하기도 했다 한다.
쓸모없던 공간이라 생각했던 곳을 운치 있는 쉼터로 바꿔 놓았더니, 가장 사랑 받는 공간이 되더란다. 그동안 있는 줄도 몰랐던 단풍나무가 색깔이 더 고운 단풍나무로 변신하더란다. 전등사가 그랬다. 과거에도 치열하게 살아서 가장 오래 남았고, 현재에도 지금 여기에 충실하다.
겨울이지만, 아직 파란 이끼가 그대로 남아있는 바위수곽에서 관광객들이 물을 마시면서 한마디 외친다. “자~ 이 물 한 번 잡숴 봐. 뱃살이 한 번에 쏙 다 빠져버려~~.” 시대의 웃음이 묻어있는 한 마디다. 무설전을 다시 가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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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신문3064호/2014년12월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