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sub533 사찰 숲길을 거닐다-불교신문2017.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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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1,900회 작성일 17-01-29 10:09본문
고구려 아도화상이 창건한 한국불교 초기 법륜 성지
단군 세 아들이 쌓아 ‘삼랑성’ 이름 지어진 성곽 따라 천년숲길 조성된 강화도 명소
전통과 현대가 어우러진 무설전·템플스테이 공간에선 불교문화 진수 체험할 수 있어
바람찬 날 눈까지 내린 강화도. 백설의 고요가 춥다. 살갗을 파고 드는 추위는 손가락 장갑의 틈을 노리더니 이내 손가락에 찬 기운을 전한다. 단군의 세 아들인 부여, 부우, 부소가 쌓아 이름 지어진 삼랑성(三郞城). 고대 토성으로 시작한 이 성은 민초들이 거친 돌을 다듬어 나라를 지키겠다는 호국의 정신이 담겨 있다. 산의 지형을 이용해 능선을 따라 2.3km에 달하는 성은 고려시대와 구한말을 거치면서 민족의 영욕을 온 몸으로 끌어안으며 강화도를 지켜오고 있다. 그 성곽 안에 자리한 전등사는 이 땅에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한 대표적인 도량이다. 서기 381년 고구려 소수림왕 11년 아도화상이 창건하였다고 하니 우리 민족과 함께 한 1700여년의 불교의 역사를 대변하고 있다. 지난 21일 찾은 전등사 삼랑성 숲길은 적요로움 그 자체였다. 새벽 일찍 찾은 도량에 내린 서설(瑞雪)은 새해를 맞이하는 방문객을 반기는 듯 도량에 사뿐사뿐 내려앉았다. 전날 대한(大寒) 추위의 여운이 남문 소나무 숲길에 잦아 들어 “윙 윙”하며 울고 있다. 간헐적으로 군락을 이룬 대나무 숲의 서걱이는 소리는 움츠러진 마음을 더 오그라들게 한다.
방문객 맞이 준비로 바쁜 남문 입구 식당과 기념품 가게의 불빛이 하나 둘 켜지며 삼랑성의 아침이 밝아 오고 있다. 한산한 매표소 직원도 눈을 비비며 주말을 시작한다. 멀리 초지대교 건너 대명항 포구로 드나드는 어선들의 부산함이 얼어붙은 대지의 어눌함과 대조를 이룬다. 풍전등화에 처한 사직은 조용한 적이 없었다. 나라를 사지(死地)에 몰아 넣은 고관대작들은 모두 흩어지고 초라해진 왕실이 바다를 건너 피난 왔던 강화도. 왕은 더 이상 왕의 권위를 내세우기조차 힘들었을 것. 그래도 나라를 지키겠다고 항거했던 민초들은 분연히 일어나 무기를 들었고, 몇 안 되는 충신들은 목숨을 걸고 성을 사수했다. 강화도는 우리 민족의 ‘마지막 보루’같은 요새였고, 그 중심에 부처님 도량 전등사와 삼랑성이 있었다. 주말 강화도를 찾는 관광객이라면 의례히 전등사를 찾는다. 강화도에 왔다면 대표적인 관광지가 전등사로 여기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조금만 세심한 눈길을 가진다면 전등사는 의례처럼 찾아가는 관광지가 아님을 안다. 반만년 우리민족의 근원인 단군신화가 서려 있고, 한국불교의 모태가 되는 성지다. 이 즈음 되면 사찰을 안내하는 리플렛이라도 한번 꼼꼼히 읽어 볼 일이다. 그 뿐인가. 고려시대에는 대몽항쟁의 근본도량이었으며 병인양요 당시 프랑스 군대를 물리친 근대사의 중심에서 국운을 지켜낸 현장이 전등사 삼랑성이기도 했다.
종해루(宗海樓)에 다다른다. 1866년 병인양요 때 장수 양헌수가 프랑스 군을 물리친 승전지다. 1660년에는 정족산성에 사고(史庫)를 옮겨 오기 위해 산성을 정비했으며 1739년에는 산성을 정비하면서 남문 문루를 만들어 종해루라 이름지었다. 이곳에서 서해 바다를 바라보며 삼랑성을 목숨 걸고 사수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전쟁에 승리자가 있었던가. 승리의 이면에는 반드시 피해도 적잖았을 것이다. 끝내 성을 지켜낸 것이 승리였지만, 그 승리의 대가도 만만찮았으리라. 종해루를 관통하면 전등사 경내가 눈앞에 펼쳐진다. 여전히 좌측에는 아름드리 소나무가 천년고찰의 역사를 대변하듯 우람하게 서 있다. 소원을 담아 쌓아올린 돌탑도 여기저기 보인다. 그 위에 눈이 소복이 쌓여 발원자의 마음이 더욱 오롯하게 들어나 보인다. 종해루를 따라 양쪽에 나 있는 계단에도 하얀 눈이 수북하다. 푸른 소나무와 백설이 어우러진 전등사 삼랑성길이 여명에 빛을 발하며 몽환적인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여전히 날씨는 차고 매섭다. 총총걸음으로 대웅보전을 향한다. 최근 설치해 놓은 윤장대와 고목이 된 은행나무가 도열하듯 언덕길에 버티고 서 있다. 그 옆에 나란한 찻집에서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연기가 얼어붙은 산사를 조금씩 녹인다. 새벽예불을 마친 스님이 대웅보전 앞마당과 대조루 계단에 쌓인 눈을 쓸고 있다. 입김이 길게 뻗어 나가는 모습이 얼마나 매서운 추위가 기승을 부리는지를 알려주고 있다.
대웅보전 마룻바닥에 깔려 있는 카펫도 차갑다. 냉골법당이지만 부처님의 모습은 자애롭다. 쓱쓱 쓸어내는 스님의 빗자루 소리만큼 지난밤 번뇌의 망상도 깨끗하게 녹아내린다. 이른아침 사찰을 찾은 신도들이 법당을 드나든다. 대조루 계단을 올라오는 불자님들의 발걸음이 힘차다. 아무리 추운 날씨라도 불자들의 간절함(信心)은 얼어붙게 하지 못하는가보다. 대웅보전 앞에는 어려운 지구촌 이웃을 돕는 단체의 성금함이 자리하고 있다. 마당에는 소원지가 탑을 이루고 있다. 정성껏 내는 성금이 ‘티끌 모은 태산’이 되어 어려운 이웃을 도왔다는 뉴스가 종무소 앞에 붙어 있다. 전통과 현대가 어우러지게 신축된 무설전(無設殿) 지붕위로 함박눈이 쏟아진다. 분명 설법을 하는 공간이 틀림없는데도 ‘설한 바가 없다’는 전각의 역설. 눈이 쏟아지는 전등사에 ‘눈이 없다’는 ‘무설(無雪)’을 설파하며 상에 집착하는 마음을 버리라고 무언설법을 하고 있다. 내려올 때가 되었다. 동문으로 향하는 길은 이미 눈에 잠겨 있다. 성문을 나서는 미끄러운 발길을 배려해 모래가 흩뿌려져 있다. 포행을 하던 스님이 연신 사진 셔터를 누르는 방문객을 향해 묻는다. “신문사에서 오셨소?” 당연한 답이 오리라는 것을 알고 있는 스님은 “네, 스님”이라는 답을 받아 든다. 스님의 뒷모습이 찍고 싶어 양해를 구했다. “뒷모습 찍어 뭐에 쓰려고요?” “신문사에서 왔으니 신문에 실으려고요.” 스님은 “허 허” 너털웃음을 지으며 뒷모습을 내어 준다. 전등사 삼랑성길에 눈이 하염없이 내린다. 스님의 모습이 가물가물 사라질 때까지.
[불교신문제3269호-2017년1월28일자] 여태동 기자 tdyeo@ibulgyo.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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