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sub533 전등사 범종은 메이드 인 차이나-i view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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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1,627회 작성일 18-05-19 08:41본문
부처님 오신 날 앞둔 현존하는 최고(最古) 도량
돌아오는 22일(화)은 불기 2562년 부처님오신날이다. 부처님이 이 세상에 오신 참 뜻을 기리는 연등이 하나 둘 씩 켜지는 가운데,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가장 오래된 전통사찰인 전등사도 부처님을 맞이할 채비가 한창이다.

▲ 전등사 대웅보전
광해군 시절에 지어진 작지만 아름다운 ‘대웅보전’
삼국시대에 창건되었다고 하는 전등사의 원래 이름은 ‘진종사’. 충렬왕 왕비인 정화궁주가 경전과 옥등을 시주한 이후 ‘전등사’로 바뀌었다. 1600년이 넘는 고찰인 만큼 시선이 머무는 곳 마다 귀한 문화재와 마주친다. 강화도에 지정된 보물이 12개인데, 전등사에만 6개의 보물이 있고, 그 중 3개는 대웅보전에 모셔져 있다. 보물 제178호 대웅보전과 삼존불, 그리고 목판으로 조각된 법화경이 그 주인공이다.

광해군 시절에 지어진 대웅보전은 규모는 작지만 단정하고 아름답다. 질박한 전각과 부처님오신날을 앞두고 절집 마당에 곱게 매달린 연등이 조화롭다. 법당 안 부처님이 앉아계신 수미단. 어느 솜씨 좋은 목수가 불심을 다해 일일이 새긴 예술작품을 넋 놓고 바라보았다. 부처님을 모신 엄숙한 공간인데 여기저기 묵으로 된 낙서가 눈에 띈다. 무슨 사연일까?

“1866년, 프랑스군이 강화도를 침략했던 병인양요가 있었습니다. 그 당시에 강화읍이 거의 점령당했는데요, 양헌수장군이 바로 이곳에서 550명의 병사를 이끌고 사력을 다해 싸웠습니다. 난생 처음 본 파란 눈의 서양군인들과의 일전을 앞둔 우리 병사들이 얼마나 무서웠겠습니까. 죽음을 앞에 두고 자신의 이름을 적은 묵 서명입니다. 대웅보전에 단청을 하지 않은 이유도,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이름 모를 백성들의 흔적을 보존하기 위해서 입니다.”
여린 중생들의 아픔 하나까지도 놓치지 않겠다는 진심이 곧 자비일 것이다. 전등사 문화관광해설사 전인옥님의 설명에 따르면, 전등사가 전하는 부처님의 자비는 이 뿐이 아니다.

▲ 나녀상
“대웅보전 추녀 끝을 잘 보면 기둥과 지붕이 만나는 부분에 사람형상의 조각상이 있습니다. 보통 ‘나녀상’이라고 하는데요, 발가벗은 여인상이라는 뜻이지요. 오래전에 전등사를 짓던 도편수가 아랫마을 주모와 살림을 차렸답니다. 헌데 이 주모가 도편수의 전 재산을 들고 도망을 쳤죠. 도편수는 자신을 배신한 여인에 대한 미움 대신, 부처님의 말씀을 전하는 법당에 조각상을 새겼습니다. 그 여인이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고 극락왕생을 했으면 좋겠다는 자비심이 담겨 있지요.”
영화 '신과함께' 흥행으로 명부전 출입도 많아져
최근에 개봉했던 영화 ‘신과함께’의 영향일까? 대웅보전 서쪽의 소담스런 약사전(보물 제179호)도 좋지만, 뒤편의 명부전에 눈길이 갔다. 모든 지옥중생이 부처가 될 때까지 성불하지 않겠다고 다짐한 지장보살을 비롯하여 죽은 자를 심판하는 열 분의 대왕과 죽은 자를 변호해주는 판관, 녹사 등 31구의 상은 독특한 조형미를 인정받아 보물로 지정되었다. 다른 전각에 비해 덜 알려진 탓에 고즈넉했지만, 최근에 ‘신과함께’의 흥행과 더불어 법당 문지방도 바빠졌다.

▲ 중국종 앞에서 문화해설사의 설명을 듣는 관람객들
아는 사람만 안다는 전등사의 숨겨진 보물은 또 있다. 중국 숙명사에서 온 ‘메이드 인 차이나’ 범종이다. 중국종이 어떤 경로로 한반도까지 오게 됐는지 알려지지 않았지만, 일본이 중국과 전쟁 과정에서 획득한 약탈품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 범종은 해방 이후 부평의 병기창에 버려진 것을 주지스님께서 찾아 온 것인데, 보물로 지정된 유일한 중국문화재다. 구리를 재료로 하여 항아리 모양으로 제작된 우리종과 달리, 중국종은 철을 사용하고 아래 부분이 8개의 파도무늬로 되어 있다. 범종각에 있는 우리종과 비교하며 직접 확인해 보자.

▲ 이주민 문화축제
전등사는 비록 오래된 도량이지만, 과거에만 머물러 있지 않다. 부처님의 자비를 염원하는 중생들과 지금 이 순간, 함께 한다. 매년 5월 마지막 주 일요일에 진행되는 이주민 문화축제. 2007년에 시작되어 올해로 13회째다. 아직 외국인 노동자 인권의식이 희박했던 2000년대 초반, 스님들이 한 불교국가에서 한국의 공장에 다녔던 이주노동자들을 만나게 되었다.
안타깝게도 그들은 대한민국에 대한 좋은 기억이 별로 없었다. 이후 고국으로 돌아온 스님들은 이주민 문화행사를 계획했다. 이제는 다문화에 대한 이해가 높아져서 지역마다 이주민 축제가 개최되고 있지만, 관광명소인 전등사에서 마련한 이 행사는 특히 불자가 많은 동남아 지역 이주민들이 손꼽아 기다린다.

작년에도 1000여명이 참석하여 국가, 민족, 피부색, 종교의 경계를 넘나드는 대 화합의 잔치를 열었다. 이주민들 스스로 준비한 문화공연과 뷔페식 점심, 무료 건강진료를 비롯한 부대행사까지. 맛있는 음식과 즐거운 체험이 있어 더욱 행복한 봄나들이다. 수도권 거주 이주민들은 관련 기관을 통해 요청하면 전세버스 픽업 서비스도 가능하다. (문의: 전등사종무소 032-937-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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