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무소 감동의 현장, 산사음악회 및 육법공양 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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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물처럼 댓글 0건 조회 2,374회 작성일 05-11-10 12:53본문
(배경음악 : 지리산 흙피리 소년의 오카리나 연주 "하늘연못")
가을이 깊어가는 2005년 10월의 마지막날, 유서깊은 사찰 강화도 전등사에서 있었던 일이다.
전등사의 유래와 역사에 대해서는 전등사 홈페이지에서 알아볼 수 있는 관계로
여기서는 그날의 아름다웠던 순간들만 보여주기로 한다.

일주문 격인 삼랑성 동문을 통과하여 좀 올라가니 윤장대가 있어 눈길을 끈다.
윤장대는 예천에 있는 용문사의 법당 안에 있는 것이 유명한데 이 곳의 것도 거의 비슷한 크기와 모양인데
다른 점은 야외에 설치되어 있어 불자들이 쉽게 돌릴 수 있게 되어 있다는 것이다.
마침 학생처럼 보이는 서양인 소녀가 별로 힘들이지 않고 돌린다.
이 소녀는 마음 속으로 무엇을 기원하고 있을까. 어쩌면 아무 생각없이 그냥 돌리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 작은 인연이 나중에 큰 불심으로 이어지기를 내심 바래본다.

"참 좋은 인연입니다."
이른 아침에 절을 향한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는 가을빛 옷을 입은 여인을 반긴다.

날이 어두워져 주위는 깜깜해져가지만 음악회 무대 주변은 조명을 밝혀 분위기 있게 변했다.
종각의 대종을 울림과 함께 가을산사음악회가 시작되었다.

근래에 해금 연주곡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데 해금은 나도 참 좋아하는 악기다. 사실 그 악기를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현을 오가는 칼(이름을 몰라서)에서 흘러나오는 때로는 청아한 듯 때로는 처량한 듯한 그 음율을 좋아한다.
현재 이름난 해금 연주자인 정수년씨가 깊은 가을소리로 도량을 더욱 짙게 물들인다.

이어서 스리랑카와 미국에서 활동 중인 명상음악가 세 사람이 부처님을 찬탄하는 노래를 부른다.

"Namo Sakyamuni Buddha-!"

지리산에 산다는 흙피리 소년 한태주와 기타 반주를 하는 그의 아버지.
소지로, 야니 등과 같은 작곡가들의 음악처럼 뉴에이지풍으로 흘러나오는 흙피리 소리는 너무 맑고 영롱해서
가을 산사에 파묻힌 대중들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하다.
땅과 하늘을 가르며 울려 퍼지는 소리가 마치 지리산 위에 사는 천신이 부는 것 같다.

줄기세포 연구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황우석 박사도 자리를 함께 했다.
황박사는 불치의 병으로 10일 간격으로 연거푸 두 번에 걸쳐 대수술을 받았는데 친구의 안내로 전등사에 참배하게 되었을 때,
만약 다시 살아난다면 부처님의 은혜이니 매달 전등사를 찾아 불공을 드리겠다고 원을 세웠단다.
그래서 18년째 그 약속을 지켜오고 있는데 심지어는 외국 출장 때도 일부러 귀국해서 전등사에 들렀다가 다시 나간 적도 있다고 한다.
또한 자신은 이미 18년 전에 죽은 목숨이니 지금 사는 것은 오로지 인류의 행복을 위해 헌신하는 일만이 목적이라 한다.
황우석 박사의 신앙담은 비록 짧은 시간이었지만 이날 모인 대중들은 많은 감동을 받아 우레와 같은 박수를 보냈다.

다음 날 아침.
전등사의 여명이 밝아온다. 멀리 높은 봉우리가 도봉산이란다.

전등사 적묵당에서 보는 일출은 담장과 함께 더욱 멋있다.

밝아오는 붉은 빛에 명부전의 신장이 오늘은 무슨 일이 있을까 하고 내다본다.

드디어 오늘의 하일라이트, 육법공양 시연회가 펼쳐진다.
먼저 꽃공양, 향공양을... 아리따운 선녀들이 차례로 부처님전에 올린다.

다음은 초공양...

이어서 떡, 과일, 백미 등 모두 여섯 가지를 올리게 된다.

육법공양을 마치고나서 느티나무 아래에 이쁜 연꽃차가 마련되었다.
큰 사발에 지난 여름에 딴 연꽃을 담고 뜨거운 물을 부으니
꽃잎이 하나 하나 펼쳐지며 보기에도 향긋한 내음이 풍겨나온다.
모두 연꽃차 한 잔씩 마시고 가세요!

도량 한 켠의 숲속에서는 소슬바람에 떨어지는 낙옆을 맞으며 어린 악사들이 고사리 같은 손들로 챠임벨 연주를 한다.

행사를 마치고 모두 돌아가니 대웅보전의 문도 닫히고 조용한 도량은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다시 한가로운 분위기로 돌아간다.

마당도 쓸고 정리를 하고 나니 오가던 사람들의 흔적도 사라지고 정말로 절간같다.

계절별로 다양한 꽃을 심어 놓아 사계절 내내 꽃을 볼 수 있다는 곳 관해암(觀海庵)은 서해 바다를 바라본다고 해서 그렇게 이름 붙였단다.

아름다운 절, 전등사에 또 하나의 아름다운 곳이 있으니 바로 죽림다원이라는 찻집이다.
마당에 있는 나무들 사이에 선 건물이 작은 오두막이 아니라 아쉽긴 하지만 동화책 같은 분위기를 좋아하는 나의 취향에 딱 맞다.
나중에 내가 숲속에 오두막을 지어놓고 살 때는 이보다 더 오붓하고 자연스러운 분위기가 될 것이라고 기대해 본다.
나무로 깎은 학이 입구에 서서 오가는 이들에게 "어서 오세요" "안녕히 가세요" 인사를 한다.
죽림다원 앞을 지날 때는 그냥 지나칠 순 없을 것 같다. 자기도 모르게 발길이 끌려 차를 한 잔 하고 가야만 할 분위기다.

죽림다원 안에 들어가니 불꽃을 태우고 있는 난로, 한지로 만든 등, 찬장에 진열된 다기들, 항아리, 창문살 등이 너무 정겹다.

누가 쌓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저마다 소원을 빌며 낙엽이 쌓인 숲에 돌탑을 하나 둘 세웠을 것 같다.
그렇게 전등사의 가을은 더욱 깊어만 간다.
2005년 10월 30-31일
물처럼 바람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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