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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전등사 댓글 0건 조회 145회 작성일 19-08-04 0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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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지스님 6월 초하루 법문
 

오늘 날씨가 덥고 농촌에서는 일들이 마무리 작업 등으로 굉장히 바쁜 날 같습니다. 다른 때보다 초하루 법회에 참석이 적습니다. 바쁜 와중에 부처님 법 배우려고 오시는 것에 대해 감사드립니다.

 

귀의(歸依) 하는 말이 있습니다. 그 귀의라는 말이 무슨 말일까요? 단순히 쓰여 있어서 생각 없이 사용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한자로 풀이하면 <돌아가서 의지한다.>라는 뜻입니다. 천태종의 교리에 보면 문자반야(文字般若) 라는 말이 있습니다. 불교에 들어와 스님들에게 의지해 처음 배우는 게 부처님 가르침을 문자반야라고 합니다. 문자반야가 되려면 문자의 뜻을 잘 생각을 해야 합니다. 무조건 따라서 하면 안 됩니다. 심리학에서 세 가지 욕구가 있습니다. 식욕, 성욕, 수면욕 이것을 인간의 기본욕구이라 합니다. 인간이 이 세 가지를 의지해 살아갑니다. 우리가 늘 밥을 먹고 배출하고 다시 식욕으로 돌아갑니다. 다시 반복합니다. 수면, 성욕도 똑같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번뇌(煩惱) 우리에게 주어진 근본무명(根本無明)인 것입니다.

 

다른 말로 나를 올바르게 알지 못 하게하는 세 가지 번뇌라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세 가지 욕구를 깊이 생각해 봐야합니다. (), (), () 귀의하며 의지하면서 살기 때문입니다. 부처님께 귀의하려면 어떻게 해야 됩니까? 부처님을 대각세존(大覺世尊)이라 합니다. 대각세존한테 귀의하려면 어떻게 할까요? 지금 우리가 생각 없이 수면하는 것 어떻게 극복해야하는지 왜 내가 잠을 청하는지 생각을 해야 합니다. 근데 요 잠에 요상한 기능이 있습니다. 자고 일어나면 우리는 나한테 필요치 않은 걸 잊어지고 필요한 것은 새로 기억합니다. 아무리 아픈 사람도 잠을 잡니다. 아프면서 자는 사람 있나요? 없습니다. 수행을 하는 사람은 자기 전에 무슨 생각을 하고 자는가 일어나서 무슨 생각을 하고 일어났나 점검을 합니다. 그게 수행의 기본입니다. 자기 전에 강한 생각, 필요한 생각이 납니다. 왜 그럴까요? 우리가 이 생명으로 탄생한 순간 모든 생명들이 식욕, 성욕, 수면욕이 3대 욕구를 격게 됩니다. 이것은 번뇌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번뇌라 생각 못 합니다.

 

부처님은 모든 걸 아십니다. 예불문에 보면 지심귀명례(至心歸命禮), 삼계도사(三界導師), 사생자부(四生慈父),시아본사(是我本師), 석가모니(釋迦牟尼) 라고 쓰여 있습니다.

 

삼계는 세 가지 세계입니다. 욕계(慾界), 색계(色界), 무색계(無色界)로 우리가 사는 세상을 욕계입니다. 다른 말로 식욕, 성욕, 수면욕이 유지가 되는 세상입니다. 그러면 색계에 가면 식욕, 성욕, 수면욕이 욕계보다 미비합니다. 더위로 올라갈수록 번뇌들이 줄어듭니다. 무색계에 가면 식욕, 성욕, 수면욕이 사라집니다. 무색계에 가면 네 가지가 있습니다.

공무변처(空無邊處), 식무변처(識無邊處), 무소유처(無所有處), 비상비비상처(非想非非想處)라 합니다. 공무변처 위에 식무변처 위에 무소유처 위에 비상비비상처가 존재합니다. 공무변처는 허공은 무한하다고 체득하는 경지이고, 식무변처는 마음의 작용은 무한하다고 체득한 경지 이며 무소유처는 존재하는 것은 없다고 체득한 경지이며 비사비비상처는 생각이 아니고 생각이 없는 것도 아닌 경지, 욕계 색계의 거친 생각은 없지만 생각이 없지 않은 경지입니다.

삼계도사라는 것은 욕계, 색계, 무색계의 중생들을 대가구로 인도하는 스승입니다. 사생자부(四生慈父)라고 합니다. 육도사생일체생령에 자비로운 아버지이다. 법문 시간에 말했듯이 부처님은 정이 있는 분이 아닙니다. 부처님은 모든 정 감정이 떠나 있다. 다른 말로 식욕, 생욕, 수면욕에 떠나 있습니다. 원각경(圓覺經)에 보면 무변허공(無邊虛空)각수현발(覺隨顯發)이다.

 

가에 있는 허공이 어디서 나왔나하면 각()에서 나왔다 부처님이 깨달은게 각()입니다. 허공가운데 모든 우주가 탄생되었는데 모든 우주는 각()에서 나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버지라 합니다. 교주와 같은 아버지가 정적인 아버지가 아닙니다. 공부하면서 단어의 뜻을 알고 공부하여야합니다. 귀의(歸依)가 무엇인가? 귀의가 무엇이냐 하면 성욕, 수면욕, 식욕을 깨달음으로 바꾸는 것이 진정한 귀의(歸依)입니다. 예를 들어 왜 잠을 자거나 먹거나 성욕이 생기는 것을 아는 것이 깨달음입니다. 모두들 위의 행위들을 안하거나 하면 참을 수는 있으나 두려움이 생깁니다. 하지만 부처님은 두려움이 없습니다. 그 이유는 이 몸이 나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두려움이 생깁니다. 부처님은 본인의 몸이라 생각안하기 때문입니다. 고통이 온다고 두려워하지 않고 고통은 고통이다.’라고 생각하십니다. 여러분이 불법을 배우고하면 두려움이 사라집니다. 모두 살려하고 죽으려는 생각안합니다. 그런 분들을 전도중생(蹎倒衆生)이라 합니다. 죽어가는데 오로지 살려고만 합니다. 어떻게 잘 죽을까 생각을 안합니다. 전도라는 말은 넘어졌다는 소린데 불교식으로 얘기하면 원인을 결과라 생각하고 결과를 원인으로 착각하고 사는 것입니다. 원인과 결과가 어디에 있는지 모르기 때문에 전도 되었다 합니다. 전도중생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이것을 모르기 때문에 산란한 존재라 합니다.

 

여러분이 이세상을 관찰해보세요 먹을 것이 있어야 생명체들이 옵니다. 새싹이 나올 때 벌레는 안생기고 조금 더 컸을 때 벌레가 생깁니다. 이렇듯 아들 딸들이 태어나는 것은 어머니 아버지에게 먹을 것이 있기에 태어난 것입니다. 어머니 아버지가 낳은게 아닙니다. 어떤 존재든 자기 자신을 위해 살아갑니다. 내가 태어날 때 어머니를 위해 태어난 것 입니까? 결혼할 때도 본인의 남편이나 아내를 위해 결혼한 사람은 없습니다. 죽을 때도 자신을 위해 죽습니다. 죽음은 절대 나쁜게 아닙니다. 천수를 다하며 자기 자신을 관찰하면서 죽는 것은 아주 행복한 일입니다. 자살하는 것은 행복한 일이 아닙니다. 왜 자살 할까요? 자기 자신이 원해 자살합니다. 본인은 죽고 싶으나 육신은 살고 싶어 합니다. 예를 들어 손가락이 잘렸을 때 그 부분은 바로 죽는게 아니라 뜁니다. 붙어 있는 부분은 몸으로 마음으로 아프다고 느낍니다. 나와 전혀 다른 존재가 아닙니다.

 

전 법문 때 잉태한 아이와 어머니는 하나인가? 둘인가? 하는 숙제를 내준 적이 있습니다. 어머니 밖으로 나와 태를 자르면 확실히 다른 존재가 됩니다. 이 세상에 어떤 생명체는 어렸을 때 같은데 달라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아주 어린 독초는 독이 없습니다. 크면서 독이 생깁니다. 그것을 사람으로 생각하자면 그것은 그 사람만이 가지고 있는 개성입니다.

이만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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