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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지스님 주지스님 2011년 5월 초하루 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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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6,377회 작성일 11-06-04 1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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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지스님 2011년 5월 초하루 법문

자 모두 합장하십시오. 반야바라밀 반야바라밀 마하반야바라밀.

합장 바로 하십시오. 반야바라밀이 잘 됩니까? 반야바라밀을 잘 하기위해서는 우리 모두 의심 없이 정진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것저것 의심하고 모든 것을 분별합니다. ‘이것이 될까?’ ‘되지 않을까?’ ‘옳은가?’ ‘그른가?’ ‘하다 잘못하면 어떻게 하지?’ 하는 분별 심과 망상으로 그르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망상이 생기는 것은 미래에 대한 확신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계속 망설이게 되고 온갖 생각을 하게 됩니다. 우리가 의심 없이 정진하여 반야바라밀을 성취하면 과거를 비추는 힘이 생기고, 과거를 알기에 미래를 예측할 수 있습니다.

오늘은 5월 초하루입니다. 하안거 결제를 하고 첫 번째 맞는 초하루입니다.

결제라 말 하는데 결은 맺을 結자이고, 제는 가지런할 制 자입니다. 흐트러져 있는 것을 가지런하게 만드는 것, 바르게 하는 것을 말합니다. 제가 어렸을 때 어머니께서 실타래를 풀어서 실패에 옮기는 것을 도왔습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어머니께서 기분이 차분하고 좋았을 때는 실타래가 잘 풀리고 잘 감기는 것 같은데, 반대일 경우에는 실타래가 엉키는 때가 많았던 것 같습니다. 왜 그럴까요? 그것은 여러분들이 스스로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오늘은 결제 후 첫 번째 초하루이니까 옛날 스님 얘기를 한 번 하겠습니다. 대한불교 조계종은 어떤 종단입니까? 불교에는 어떤 종파가 있는 지 말해보세요.(대답 없음) 불교에서 종파를 나눌 때 교종이냐 선종이냐를 먼저 분류합니다. 선종은 또 남종 선과 북종 선으로 나눕니다. 교종은 어떤 경전을 주 교과서로 하는가에 따라서 종파가 달라집니다. 대한불교조계종은 선종이 중심이 되어서 제 종을 포섭하는 종파입니다. 그래서 수행법도 간화선을 주 수행으로 하면서 기도, 염불, 주력, 정근, 간경, 정근, 참선, 사경 등 여타 수행을 겸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 기도할 때 간경하죠? 천수경. 염불하고, 염불하는 중간 중간 주력을 하고, 정근도 하고 참선 빼고 거의 다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도 이제는 참선을 해야 합니다.

불교의 교주는 석가모니 부처님이고, 선종의 초조는 마하가섭 존자이고, 2대조는 아난존자입니다. 이 선종이 인도지역에서 27대 반야다라까지 내려오고, 중국에 선법을 전하기 위해 오신 보리달마가 28대가 되는데, 동쪽에서는 초조가 됩니다. 달마대사가 선법을 전한 뒤 혜가스님, 도신스님, 승찬스님, 도신스님, 홍인스님, 6조인 혜능스님까지 내려옵니다. 홍인스님의 큰 제자는 신수스님이었지만 전법은 행자였던 혜능스님이 받습니다. 혜능스님은 전법을 받은 후 고향인 광동 성으로 돌아가 법을 전하여 남종선의 시조가 되고, 신수스님은 북종선을 일으킵니다. 신수스님의 북종선은 돈오점수 수행관으로 삼습니다. 돈오점수는 깨달은 뒤라도 자신을 닦아 작은 습까지도 없애야 한다는 것입니다. 남종선은 단박에 자신의 자성을 깨달으면 나머지는 모두 사족이며, 실상이 드러나면 그림자는 필요 없는 것이라는 돈오돈수를 주창합니다. 이렇듯 북종선은 점수를 말하고, 남종선을 돈오를 수행관으로 합니다. 남종선은 5가 7종으로 나누는데 대한불교조계종은 임제의현 스님이 개창한 임제종 계통입니다. 임제의현 스님의 맥을 이어서 조계종의 종조이신 도의선사께서 이 나라에 선법을 전하게 됩니다.

선종의 동토 초조인 달마대사에게는 4명의 상수제자가 있습니다. 그 중 2조로 불리는 혜가 스님은 원래 법명이 신광이었습니다. 범어사 불이문 주련에 “신광불매 만고휘유 神光不昧 萬古輝猷”라는 글이 씌어져 있는데, 뜻을 풀이하면 “신묘한 빛은 어둡지 않고 만고에 빛나노니” 인데, 신묘한 빛이 신광스님을 뜻합니다. 이렇게 신광스님의 이름을 알게 되면 그 뜻풀이를 정확히 알 수 있습니다. 달마대사의 나머지 3명 제자는 도부. 총지, 도육스님입니다. 이 중 총지스님은 비구니로 달마대사한테 법을 인정받았습니다. 여기 계신 보살님들도 열심히 수행하면 여러분도 그런 경지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달마대사가 임종을 앞두고 제자들을 모두 불러서 저마다 그동안 얻은 바를 말해 보라고 했습니다. 도부스님은 ‘문자는 취할 것도 없고, 버릴 것도 없다.’고 말하자 ‘너는 나의 가죽을 얻었구나.’라고 말했습니다. 다음에 비구니 총지 비구니가 나와 ‘제가 본 바로는 아난이 아촉불국을 한 번 보고는 다시 보지 못한 것과 같습니다.’라고 말하자 ‘너는 나의 살을 얻었다.’고 말했습니다. 이번에는 도육스님이 나와서 ‘사대는 본래 공하고 오온도 본래 있는 것이 아니니, 제가 본 바로는 한 법도 가히 얻은 것이 없다고 생각합니다.’고 하자 달마 대사는 자신의 뼈를 얻었다고 평하였습니다. 그리고는 혜가스님이 나와 아무 말 없이 절하고 물러가 다시 제 자리에 서자 ‘너는 나의 골수를 얻었다’고 했습니다. 왜 혜가에게 골수를 얻었다고 했으며 전법제자로 삼았을까요? 왜 그랬을까요? 이것도 여러분께 주는 숙제입니다. 답을 가져올 때 책에서 보고 가져오면 안 됩니다. 책에 있는 답이 아니라 여러분이 생각해서 가져오십시오. 선은 여기서부터 시작됩니다.

선은 언제 어디서 선 수행이 이루어지는가? 선은 생활과 떨어져서 성립이 될 수 없습니다. 기도는 생활과 떨어져도 가능합니다. 여러분들도 집에서 기도하는 것보다 절에 와서 기도하는 것이 더 잘된다고 합니다. 하지만 선은 생활과 분리할 수 없습니다. 선은 이 시간 이 자리에서 생각 생각이 일직선으로 나갈 때 선의 바탕이 만들어 집니다. 생각 생각을 이어가는 오직 한 생각을 삼매라고 합니다. 부처님을 부르며 염불할 때 오직 부처님만을 생각하며 염불에 집중할 때 염불삼매라고 합니다. 참선에서 화두에 집중하는 것을 화두삼매라고 합니다. 스님들이 오직 화두만을 생각하고, 화두가 성성하고 톱니바퀴처럼 한 치의 틈도 없이 잘 돌아가는 것 이것이 일여입니다. 일여 중에 제일 먼저 나오는 것이 움직이고 있으나 정지해 있으나 언제든지 집중되는 동정일여입니다. 다음이 꿈속에서나 깨어있거나 화두에 집중하는 몽중일여입니다. 다음이 오매일여라고 합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화두를 놓치지 않음을 말합니다. 이런 집중이 있을 때 대나무 부러지는 소리나 물소리에 깨닫는 기연을 얻을 수 있습니다.

예전에 임제의현스님은 누구 물으면 ‘할’로 소리치고, 덕산스님은 몽둥이로 답을 하고, 황벽스님은 행동으로 보여주었다고 합니다. 황벽스님이 어느 날 산 아래에 갔다가 올라오는데 은사인 백장선사를 만났습니다. 백장선사가 어디를 다녀오느냐고 물으니 산에서 버섯을 따 왔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백장선사가 “산 아래 호랑이 한 마리가 있다던데 보았느냐?”라고 물었다고 합니다. 황벽스님이 뭐라고 대답했을까요? 생각나는 대로 대답해 보세요. (대답이 없음) “어흥” 하고 호랑이 소리를 냈답니다. 그러자 백장선사가 허리춤에서 도끼를 빼들고 호랑이 소리를 내면서 우는 황벽스님을 내리 찍으려 하였고, 황벽스님은 날쌔게 달려들어 백장선사의 손에서 도끼를 빼앗아 얼른 따귀를 세차게 후려쳤다고 합니다. 그날 밤 만참 때 백장선사는 법상에 올라 "대중들아, 산 아래 호랑이가 한 마리 있으니 그대들은 조심해라. 그대들은 드나들 때 앞뒤로 잘 살펴 다녀라. 이 노승도 오늘 아침 호랑이에게 한입 물렸다. " 고 했답니다. 이것이 무슨 소리입니까? 여기에 묘미가 있는 것입니다. 아까 여러분에게 준 문제의 답도 여기에 있습니다. 왜 달마대사가 혜가스님을 전법제자로 삼았을까? 선은 어디에서 이루어진다고 했습니까? 선은 바로 그 현장에서 이루어집니다. 현장을 떠나서 하는 것은 선이 아닙니다. 내가 하는 생활 생각 자체가 바로 선이고, 수행입니다. 선은 문 없는 곳에서 문 있는 곳으로 들어가는 것이고, 교는 문 있는 곳에서 문 없는 곳으로 들어가는 것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과거를 살 수 없고, 미래를 살 수 없습니다. 오직 이 자리 이 순간 살아가는 것입니다. 세상에 어떤 능력이 출중한 사람이라도 동시에 두 가지 일을 못하고, 두 가지 생각을 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이 순간을 사는 존재들입니다. 우리 인생은 순간순간의 한 점들이 모여서 하나의 선을 이룬 것입니다. 그 선의 굵기와 길이에 대한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우리는 한 점에서 사는 존재라는 것을 인식해야 합니다. 부처님도 한 점에 사는 존재입니다. 한 점에 사는 존재라는 것에서 부처님과 내가 다르지 않습니다. 다만 부처님은 내가 한 점에 사는 존재라는 것을 확연하게 알고 있고, 우리는 관념으로 아는 차이가 있습니다. 관념이라는 것은 생각해서 이해하여 안다는 것입니다. 내가 화두에 계합하여 생활 속에서 치열하게 사는데 거기에 달라붙을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달라붙는 것이 있다는 것은 치열하게 살지 않았다는 이야기입니다. 여러분들은 집에 가서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부처님께서는 수행하는 사람은 거문고 줄처럼 너무 느슨하지도 말고, 너무 팽팽하지도 말게 하라고 했습니다. 너무 느슨하면 소리가 나지 않고 너무 팽팽하면 줄이 끊어집니다.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느슨하면 지치고, 탄탄하거나 급하면 놓치기 쉽습니다. 급하면 돌아가라는 말이 있습니다. 급하면 세상의 이치를 제대로 볼 수 없습니다.

세상의 이치를 아시는 부처님의 삶을 우리도 해볼 까? 하는 생각을 내는 것이 수행의 시작입니다. 부처님의 말씀과 조사들의 행동은 우리들의 삶을 이끄는 길라잡이입니다. 전국 100여개 선원에서 2,000여명의 스님들이 산문 출입을 금 한 채 안거에 들어갔습니다. 안거 후 처음 맞는 초하루 법회를 맞아 모두가 새로운 마음으로 열심히 수행합시다. 성불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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