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지스님 2010년 9월 초하루 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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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3,178회 작성일 10-11-24 16:23본문
9월 초하루 법회 법문
자 모두 합장하시기 바랍니다.
반야바라밀 반야바라밀 마하반야바라밀.
합장 바로해주세요.
전 추석을 미국에서 보냈습니다. 그래서 여기에서 차례를 지내지 못하고 미국 뉴저지에 있는 보리사에서 차례를 지냈습니다. 9월 14일부터 24일 까지 한국불교의 세계화라는 의제(議題)를 갖고, 원장스님을 모시고 미국을 다녀왔습니다. 제가 단장으로 갔다 오는 바람에 주지가 꼭 해야 할 차례를 못 지내 드렸습니다. 그래도 그곳에서 우리 신도님들의 조상님을 위해 열심히 지성으로 차례를 지냈습니다. 그리 아시고 서운해 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오늘은 9월 초하루입니다. 우리가 해마다 하는 삼랑성역사문화축제, 내일하고 모레면 끝이 납니다. 내일은 아마 이 도량이 가득 차지 않을 까 싶습니다. 음악회를 하는데, 누가 온다더라? 장윤정, 조관우, 박혜경 그리고 노래하는 스님 정율스님 등이 출연합니다. 보통 스님들은 출가 전에 전문 지식을 가지고 있다가 출가 후 그 기술을 접목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스님은 출가 후에 성악을 전공하여 노래를 시작한 분입니다. 지금 미국에서 음악을 통해 포교를 하고 있습니다. 그 스님이 여러분들께 부처님의 찬불가를 성악으로 들려줄 것입니다. 제가 이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모레 끝나는 삼랑성역사문화축제에 말씀을 드리기 위함입니다.
강화의 역사는 우리나라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강화를 지키는 것은 민족의 마지막을 지키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강화는 배수진을 치는 심정으로 죽음을 불사하고 지켜낸 곳입니다. 강화는 몽고 침략 때 많은 피를 흘렸고, 구한말에 화승총을 가지고 기관총을 가진 프랑스군에 맞서 전투를 해서 싸워 이기고, 신미양요 때는 어재연 장군을 비롯한 많은 조선 군사들이 전멸을 당한 곳이기도 합니다.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산화(散華)해 간 우리 조상님들에게 제사를 지내는 영산대재가 모레 있습니다. 이 영산대재는 삼랑성역사문화축제 중의 백미로 조상들의 은덕에 감사를 드리고 호국영령들을 되돌아보는 기회가 될 것입니다.
가을입니다.
제가 1주일에 한 번 절에 오는데 올 때 마다 들판이 다릅니다. 가을은 결실의 계절이라 하는데, ‘나는 올 해 얼마만큼 농사를 졌을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농사를 짓지 않고서는 살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많은 돈을 갖고 있어도 식량이 없으면 살 지 못하잖아요. 우리처럼 육체를 가진 존재는 먹어야 삽니다. 아무리 돈이 많아도 식량이 없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요즘 우리는 식량의 소중함을 모르고 있는 것 같아요. 돈 만 있으면 모든 게 다 해결되는 것처럼 생각하는 것 같아요.
제가 어제 좀 늦게 들어왔어요. 운전을 하다가 잠이 와서 라디오를 켰는데, 모 재벌 회장 셋째 아들이 또 사고를 쳤더라고요. 다른 분의 이야기를 들으니 그 재벌 회장은 그 셋째 아들의 자모회장을 했을 정도로 자식교육에 애정이 남다르다고 합니다. 그런데도 그 재벌 회장의 아들들은 계속 사고를 치곤합니다. 전 그 분 이야기를 듣고는 깜짝 놀랐어요. 자식 농사를 잘 짓기 위해 그렇게 노력했는데도 왜 자식은 잘 자라지 못했을까? 저희가 절에 처음 오면 배우는 경전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제가 많이 써 먹지만 ‘모래를 가지고 아무리 밥을 해도 그것은 먹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지혜가 있는 사람은 쌀을 가지고 밥을 짓는데, 지혜가 없는 사람은 모래를 쌀이라 생각하고 밥을 짓는 것과 같다고 그랬습니다. 이걸 보면서 ‘아! 내가 중 되기 참 잘했다. 중 되기 잘했다.’ 라는 생각을 해요. 왜 잘했느냐? 내가 ‘어리석은 일을 인식하고’, ‘어리석은 삶에서 진리를 위한 삶으로 증진시킬 수 있도록’ 올바르게 사는 법을 가르치는 부처님 법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어느 하나에 신경을 계속 세우고 집착을 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 집착이 강하면 강할수록 사고의 틀과 폭이 좁아지죠. 사고의 틀이 좁아지면 다른 것이 보이질 않습니다. 백유경에 보면 이런 말이 나옵니다. 맹인 여러 명한테 코끼리를 만지게 하면 꼬리를 만진 사람은 ‘아, 이게 코끼리구나.’ 머리를 만진 사람은 ‘아, 이게 코끼리구나.’ 만진 부분에 따라 코끼리가 다 다르다는 거죠. 인식하는 것에 따라. 우리가 집착이 많아지면 장님이 코끼리를 만지는 것과 같습니다. 여기에서 장님이란 지혜가 없는 사람이란 뜻입니다. 지혜가 없는 사람은 아무리 노력을 해도 훌륭한 결과를 가져 오지 못합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우리 삶 중에서 가장 강조한 것이 ‘지혜를 돈발(頓發)해라.’ 라는 것입니다. 지혜라는 것은 ‘감추어져 있는 보석과 같다.’고 그랬어요. 이미 가지고 있는 보석인데, 보석을 가진 줄 모르죠. 가진 줄 모르니까 끝없이 가지려고 합니다. 사실은 다 가지고 있는데. 그냥 알면 되는데.
그 재벌 회장이야기를 듣고 참으로 어리석은 사람이라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천 가지 복을 짓는 것이 한 순간 내 지혜로움을 증득하기 위해 마음 내는 것보다 못하다고 그랬어요. 그래서 원효스님은 이런 말씀을 했습니다. ‘삼일수심천재보三日修心千載寶요, 백년탐물일조진百年貪物一朝塵이라’ ‘삼일동안 닦은 마음은 천년의 보배요, 한 평생 탐착한 재물은 하루아침의 먼지와 같다’는 뜻입니다. 이렇듯이 지혜로운 사람은 마음을 닦으려 하고 지혜로운 사람들은 여유로운 삶을 가지려합니다. 지혜가 없는 사람은 어떻습니까? 다람쥐가 아무리 체 안에서 뛰고 달려 나가려 하지만 다람쥐 쳇바퀴 도는 겁니다. 뛰어 나오면 이 넓은 세상이 있는데, 보질 못하고 열심히 달리기만 하는 거죠. 내 인생은 그렇게 살지 않았는지 한번 생각해봐야 합니다.
왜냐하면 가을이거든요. 가을에 추수를 잘 해야 내년 씨앗을 남깁니다. 건강한 곡식을 거둬야 그것이 내년에 다시 파종되어 건강한 싹을 틔울 수 있는데, 건강하지 못하면 어떠합니까? 싹을 틔우지 못하죠. 싹을 틔우지 못하면 내 있는 것 먹고 죽는 거예요. 창고가 아무리 커도 그 창고에 있는 것만 가지고 먹으면 언젠가는 창고는 비고 맙니다. 내가 먹은 것만큼 다시 채워야 영원히 먹는 거예요.
조계종에는 교육, 복지, 재난구호를 위한 기금을 모집하는 아름다운 동행이라는 복지 공익기부재단이 있습니다. 제가 그곳의 책임을 맡고 있는데, 지난 14일 청계광장에서 ‘비움으로 행복 찾기’라는 주제로 108배를 하면서 1배에 100원을 기부하는 행사를 했습니다. 이 행사를 왜 했냐면...
우리는 점점 각박한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갖은 사람은 더 갖으려 하고, 가지지 못한 사람은 갖은 사람에 대한 원망 만 키우고 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됩니까? 이 사회가 점점 힘들어 지는 거예요. 부처님 말씀에 보면 ‘이 세상은 가득 차 있다.’ 고 했습니다. 이 뱃속에 뭐가 차있습니까? 이 머릿속에는 뭐가 차있습니까? 꽉 차있는데 뭐가 차있는가?
부처님은 이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행복 전도사라고 저는 여러분께 소개합니다. 세상에는 자기가 가진 만큼 쓸 수 있고, 가지지 못한 것은 쓸 수 없어요. 그럼 내가 뭘 가졌느냐. 가져서 쓰기는 쓰는데 쓰임의 결과가 행복할 수도 있고, 행복하지 못할 수도 있어요. 그래서 ‘비움으로 행복 찾기’를 했습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가장 큰 재산, 뭔지 압니까? 우린 중생이니 가장 큰 재산은 욕망이라, 욕심. 뭐든지 가지려 하는. 무엇이든 끌고 오려고 하는 이 마음. 그 마음, 그 욕심 또는 뭡니까? 욕심대로 안 되니까 일어나는 진심(嗔心). 이 욕심과 진심을 합쳐서 중생심이라 그래요. 이 욕심과 진심이 가득 차 있으면 중생이고, 어리석음이라 해요. 그래서 어리석은 자를 중생이라 하고 중생이 쓰는 마음을 중생심이라 부르는데 그 것이 욕심이고, 진심입니다. 이 욕심과 진심을 비우라는 거죠. 그럼 그 속에는 뭐가 들었나? 제가 여러분께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을 겁니다. ‘여러분은 부처님께 자꾸 갖다 바쳐라.’ 뭘 갖다 바치느냐. 성내는 마음, 원망하는 마음. 부처님께 갖다 바쳐라. 성내는 마음, 원망하는 마음을 갖다 바쳐라. 그러면 내가 주었기 때문에 비워있다, 주는 만큼. 부처님은 주는 만큼 주는 분이잖아요. 그럼 뭘 주느냐, 부처님은. 자애로움을 줍니다. 그 자애로움이 행복이니까.
우리가 매일 힘든 것만큼 불행한 게 없잖아요. 어디에 매여 사는 것만큼 불행한 게 없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는 가장 크게 어디에 매여 있습니까? 죽음이라는 고삐에 매여 있잖아요, 고삐에. 예전에 우리가 소를 먹이러 갈 때, 처음 잘 모를 때는 소를 풀어놔요. 그럼 나중에 소를 찾기 어렵습니다. 점차 요령이 생겨 들판에 가면 고삐를 길게 늘어 뜨려 놉니다. 소를 몰고 갈 때 고삐와 가서 길게 늘이는 고삐를 따로 가져가죠. 고삐가 길면 소가 말뚝에 고삐가 메어 있는 줄 몰라요. 우리도 그런 거예요. 내가 태어났을 때 고삐가 길기 때문에 내가 메어 있는 줄 몰라요. 그러다가 시련이라는 이 말뚝이 계속 줄을 당깁니다. 자꾸 당기다 보면 팽팽해지고, 그때 느끼는 거예요. 여러분도 다 죽음이라는 걸 느껴봤을 거예요. 우리가 가장 크게 메어 있는 게 죽음이잖아요. 여기에 메여있으니 답답하기 시작하는 거예요. 그래서 이것을 풀어야 합니다. 풀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성내는 마음, 미워하는 마음, 자꾸 가지려고 하는 마음을 버려야 합니다. 가지려 하는 마음은 욕심이고, 욕심 때문에 진심이 생기고, 진심이 생기니까 원망하는 마음이 생깁니다. 여기에는 70이 넘는 분도 계시고, 30대도 계시고, 40대, 50대도 계시는데 지금까지 계속 가지려고만 하지 않았는가? 가지려 했으면 못 떼어내요. 필요할 때 쓰고, 필요 없으면 필요한 사람에게 줘야 해요. 필요 없는 것을 모아 놓으면 필요한 사람이 가져갑니다.
이 가을 어떤 농사를 얼마만큼 지었는지 돌아보기 바랍니다.
벼농사를 한 번도 지어보지 않은 사람이 논에 가서 벼는 많고, 피가 적은 것을 봤습니다. 많은 것은 하찮고, 적은 것을 귀하다고 생각해서 벼를 뽑아버리고 피를 키웠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정말 우리는 그렇게 살지 않았는지 한 번쯤 돌아보는 9월이 되기를 바랍니다. 금강경에도 ‘비워있는 만큼 채워질 것이다.’ 라고 씌어져 있습니다. 무엇을 채울 것인가? 비우면 채워집니다. 비우려는 마음은 아름다운 마음입니다. 비운다는 것은 나눈다는 얘기와 같습니다. 괴로움은 나누면 나눌수록 작아지고, 즐거움은 나누면 나눌수록 더 커진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여러분들께서 다시 한 번 내가 어떤 농사를 얼마나 지었는가? 이제 추수를 했으니까 조금은 나누는 삶을, 경제적 여유가 있는 사람은 경제적 여유가 없는 사람에게 경제력을 나누고, 시간이 많은 사람은 그 시간을 쪼개고, 육체적 힘이 많은 사람은 그 힘을 나누고.
나누려고 하면 나눌 수 있는 것이 엄청 많아요.
정말 가을 추수 잘 합시다. 성불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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