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지스님 2016년 6월 초하루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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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2,503회 작성일 16-07-04 15:19본문
초하루 법회 법문
오늘은 초하루입니다. 한 달이 시작되는 날입니다. 옛 성현들은 하루의 시작은 인시에 있다고 했습니다. 인시는 새벽 3시에서 5시까지를 말합니다. 우리 조상들은 이때 일어나서 준비하고, 계획하면서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그럼, 일 년의 시작은 언제일까요? 일 년의 시작은 정초 15일 간에 있습니다. 우리가 정월에 정초산림기도를 하는 것은 일 년을 보다 참되게 보내기 위해 계획하기 위함입니다.
전쟁에서 이기기위해서는 전략과 전술을 세웁니다. 전술은 그때그때 상황에 맞추어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 세우는 것이고, 전략은 장기적으로 어떻게 하면 승리할 것인가를 고민하면서 수립하는 것을 말합니다. 정초에 일 년 계획을 세우는 것은 전략과 비슷하고, 한 달 또는 하루 계획을 세우는 것은 전술에 해당합니다. 오늘 초하루는 한 달 동안 어떻게 살 것 인가? 무엇을 하고 살 것인가? 무엇을 배우고 살 것 인가? 무엇을 베풀고 살 것인가? 생각하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우리 불자들의 궁극은 깨달음입니다. 깨달음에는 단계가 있습니다. 먼저, 소승이라고 하죠. 나 자신을 뒤 돌아 보는 것입니다. 내가 이 세상에 어떻게 왔고, 왔으면 어떻게 살아가는가? 살다가 죽은 후에는 어디로 갈 것인가? 생각하는 것이 소승입니다. 그래서 수행의 첫 발은 자기 자신을 관찰 하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마지막으로 말씀하신 것은 자기 자신을 의지하고, 법에 의지하라. 자등명, 법등명입니다. 법이라는 것은 신, 수, 심, 법입니다. 身은 자기 자신 즉 육근을 살피면서 일어나고, 들어오고, 일어나지도 않고, 들어오지도 않는 것을 잘 관찰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통해 법을 알고 마음을 잘 알아야 수행이 될 수 있습니다. 소승이나 대승 모두 수행하는 이유는 탐 진 치 삼독을 소멸하기 위함입니다. 금강경을 보면 ‘응무소주 이생기심’ 즉, ‘응당 머무는 바 없이 마음을 내라’는 가르침이 있습니다. 육조 혜능스님이 나무를 팔러 갔다가 주막에서 금강경을 읽고 있는 스님이 이 구절을 읽자 깨달음이 열렸다고 합니다. 여러분들도 이 부분을 마음에 새겨서 계속 뒤 돌아보면서 수행을 하면 금강경의 참 뜻을 알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금강경에는 무아를 이루어서 완전한 공에 들어간 사람 즉 아라한들 만 나옵니다. 욕계, 색계, 무색계에 있는 우리 중생들은 어디에 머물렀기에 ‘응무소주 이생기심’ 이란 말을 했을까요? 욕계, 색계, 무색계 중생들은 탐, 진, 치 삼독에 머물러 있기 때문에 그런 말을 한 것입니다. 여기 계신 분들 모두가 하루에 생기는 모든 일들, 모든 생각들을 한 번 적어 보시길 바랍니다. 다 적고나서 내가 욕심이 없이 내는 마음이 있었던가? 생각해 보세요. 거의 욕심에 의해서 생긴 마음일 것입니다. 무아라는 것은 욕심에 머무르지 않은 것을 말합니다. 무아에서는 무슨 생각을 낼까요? 첫째는 십선행의 마음이고, 둘째는 육바라밀의 마음이고, 셋째는 아뇩다라삼막삼보리의 마음입니다. 그러면 육조 혜능스님처럼 머무는바 없이 선한 마음을 내려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해야 할까요? 금강경에 인욕선인이 나오죠? <수보리 여아석위가리왕 할절신체 아어 須菩提 如我昔爲歌利王 割截身體 我於 이시 무아상 무인상 무중생상 무수자상爾時 無我相 無人相 無衆生相 無壽者相> 라는 구절입니다. 이 뜻은 <수보리야! 내가 옛날 가리왕에게 몸을 베이고 찢길 적에 내가 그 때에 ‘나라는 생각’이 없었고 ‘남이라는 생각’이 없었고 ‘중생이라는 생각’이 없었으며 ‘오래 산다는 생각’이 없었기 때문이다.>입니다. 부처님께서 인욕선을 닦을 때 삼백 선을 닦았다고 합니다. 여러분들 제가 예를 하나 들어보겠습니다. 격투기 운동선수들은 오랜 기간 동안 매일 엄청난 양의 운동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경기장에 들어서면 자기도 모르게 이기기 위한 동작들이 나오죠? 여러분들도 선행을 어떻게 해야 되나? 생각 없이 자동으로 선행이 나올 때 까지 선행을 해야 금강경에서 나오는 ‘응무소주 이생기심’이란 말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욕계 중생으로 육바라밀을 행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재물이 부족하고, 지혜도 부족합니다. 오늘 초하루 법회에 나와서 기도를 하는 이유는 무엇 때문입니까? 여러분들이 재물이 부족하고, 지혜가 부족하고, 법이 부족해서 육바라밀을 다 원만히 수행할 수 있도록 불보살님의 가피를 얻고자 함이 아닙니까? 저도 이 자리를 빌어서 신도님들이 지혜를 구족하도록 최선을 다하고 저도 지혜를 구족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이 세상은 지혜가 없으면 삭막한 세상이 됩니다. 예를 들면 지나가는 거지에게 집 한 채를 보시하면 올바른 보시일까요? 올바른 보시가 아닙니다. 거지는 한 끼 한 끼 얻어먹는 사람입니다. TV에서 똑똑한 거지에게 “직장을 마련해 줄 테니 다녀보겠냐?”고 물으니 거지는 “이번 생은 거지로 살겠다.” 고 답하더군요. 거지에게는 집 보다는 친절하고 상냥하게 주는 따뜻한 밥 한 그릇이 온전한 보시입니다. 이렇듯이 보시도 지혜로워야 합니다. 여러분들 모두가 훌륭한 부처님 법을 배워서 지혜를 얻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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