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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지스님 9월 초하루 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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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2,026회 작성일 17-11-01 1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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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하루 법문

우리 불자님들은 늘 자기 자신을 관찰 할 것입니다. 자기 자신을 관찰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염불을 하거나 주력을 하거나 진언을 해도 경전을 읽어도 명상, 위빠사나, 사마타, 선정을 닦아도 자기 자신을 관찰할 수 있습니다. 자기 자신을 관찰함으로써 이 세상 만물과 우주법계의 생성까지 알 수 있는 깨달음을 얻을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불성이 있다고 합니다. 불성을 다른 말로 하면 한 물건이라고도 합니다. 이 한 물건이 천지를 받치고도 남고, 이 한 물건을 잘 쓰면 부처가 되기도 하고, 이 한 물건을 잘 못쓰면 삼악도에 떨어져 고통을 받기도 합니다.
여러분들, 지옥에 왜 떨어지는지 아십니까? 삼악도 중에서 가장 고통 받는 곳이 지옥입니다. 어떤 인과 때문에 떨어지는지 아세요? 축생이나 아귀나 지옥에 있는 이들은 다시 지옥에 떨어지지 않습니다. 인간만이 잘못하면 지옥에 떨어집니다. 인간 이상의 천상세계는 바로 지옥으로 떨어지지 않습니다. 누진복락漏盡福落이라. 복이 다하면서 단계로 떨어집니다. 이에 반해 인간은 곧바로 지옥으로 떨어질 수 있고, 아귀나 축생으로 떨어질 수 있습니다. 지옥에 떨어지는 것은 부모를 죽이거나 스승을 죽인 경우와 성인이나 아라한을 죽인 경우에 해당합니다. 지옥에서는 일일만생만사一日萬生萬死라 합니다. 하루에 만 번 태어나고 만 번 죽은 고통을 당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태어날 때 고통은 모두 잊었고, 죽는 고통은 죽어보지 못했으니 알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생사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을 하지 않습니다. 현재 만 편하면 현실에 안주하려고 합니다. 아까 말씀드린 것과 같이 불법을 해치고, 아라한을 해치고, 부모를 해하고, 스승을 해하고, 국왕을 해할 경우에는 지옥에 떨어집니다.
우리가 육도윤회를 하는데, 그 이유를 아십니까? 정情 때문에 그렇습니다. 능엄경에 보면 인간은 정이 중간쯤 되고, 인간보다 정이 많으면 축생이 되고, 축생보다 정이 많으면 아귀가 되고, 그 보다 많으면 지옥에 떨어진다고 합니다. 정은 바로 탐욕貪慾을 말합니다. 탐욕의 불길은 자신을 태울 뿐 만 아니라 남도 태웁니다. 탐욕 때문에 사람을 죽이고, 탐욕 때문에 모든 갖은 죄악을 저지릅니다. 불성佛性이라고 하는 것이 자성自性이라고 하는 것이 탐욕도 되고, 부처도 되곤 합니다.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지옥세계에는 오직 탐욕만이 있습니다. 극한 탐욕에 타 죽었다가 다시 태어났다가 타죽었다 태어났다 합니다. 아귀세계에는 무엇이 있습니까? 아귀는 욕망만이 있습니다. 아무리 채우려 해도 욕망이 채워지지 않으니 괴로운 것입니다. 축생세계에는 무엇이 있습니까? 축생에는 좋아하는 것만 있습니다. 좋아하는 것이 채워지기도 하고 비워지기도 하면서 끝없는 갈애渴愛를 일으킵니다. 우리 인간세계는 어떻습니까? 우리 인간세계는 지옥, 아귀, 축생이 갖고 있는 것을 모두 갖고 있으면서 천상의 마음도 갖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서는 아라한의 마음, 보살의 마음, 부처님의 마음도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인간이 수행하기 가장 좋다고 합니다. 모든 부처님들이 모두 인간세계에 오셔서 깨달음을 얻어 성불하셨습니다. 이렇듯 인간세계는 수행하기가 좋은 곳입니다. 우리 보살님들 연세가 많이 드셨죠? 이 인간세계가 싫다고 빨리 가시려고 하면 안 됩니다. 어차피 온 김에 마음을 내고, 더욱 신심信心을 내고, 분심忿心을 내어 더욱 정진하여 성불하셔야 합니다.
능엄경에 보면 정이 많으면 축생이하로 태어나고, 축생 중에서도 정이 더 많으면 물고기로 태어난다고 합니다. 축생 중에 정이 덜 하면 새로 태어납니다. 새가 나는 이유는 늘 날고 싶어서 나는 것입니다. 그 나는 마음을 잘 관찰하면 깨달을 수 있는데, 새는 그렇지 못하고 날기만 합니다. 이 세상 각자各自한테는 불성이 있습니다. 불성은 한 물건이라고도 합니다. 한 물건은 마음이라고도 하고, 공이라고도 하고, 성품이라고도 합니다. 똑 같은 말은 아니지만 근기설법根機說法이라해서 알아들을 수 있는 사람들에게 각각 맞게 말한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똑 같다고 말하지만 똑 같지는 않습니다. 제가 강원에서 ‘연기緣起는 공空이다.’라고 배웠습니다. 헌데, 연기법은 곧 공이 아닙니다. 대승기승론 만 읽어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변화하는 것도 진리이고, 변하지 않는 것도 진리임을 알 수 있습니다. 연기법은 변화하는 것을 말하죠? 하지만 변화하지 않는 것도 있습니다. 원각경에 보면 <무변허공 각소현발無邊虛空 覺所顯發>이라. <가없는 허공이 어디서 나왔는가? 바로 각에서 나왔다.> 바로 그 각은 변함이 없습니다. 허공도 변하고, 물질도 변하고, 땅속도 변하고, 물속도 변하지만 변하지 않는 것은 불성佛性, 각覺 밖에 없습니다. 이만 법문을 마치겠습니다. 성불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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