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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지스님 9월 초하루 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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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전등사 댓글 0건 조회 2,300회 작성일 18-12-18 0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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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날씨가 어느덧 가을인 것 같습니다.


우리는 부처님 법을 배우면 배울수록 자신이 있고 남의 눈치를 보지 않고 이렇게 살아야 합니다.


그것은 다른 말로 이 세상에 내가 어디에 있으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부처님 법을 배울수록 알아야 합니다.


당시 부처님 제자들은 법이 높을수록 법랍이 많이 될수록 항상 부처님 가까이 가 있습니다.


부처님 법은 자기 자신을 관찰하는 종교입니다.


우리는 오래 살며 나이를 들어가고 배우며, 경험을 많이 쌓은 사람을 지혜롭다고 합니다.


그런데 자기를 관찰하지 않고 사는 사람은 지혜로워지지 않습니다.


나이를 먹어도 지혜롭지 않습니다.




하루살이는 하루를 살다 갑니다. 그런데 우리는 하루살이를 시원찮게 또는 하찮게 여깁니다.


그런데 보면 하루살이같이 위대한 것이 없습니다. 하루를 살면서 인간의 100년 동안 할 일을 다 합니다. 하루에 태어나서 밥 먹고, 가족도 남기고, 자손도 남기고 다 할 일을 하고 갑니다.


그런데 우리 인간은 100년 동안 살면서도 못다 한 일이 있습니다. 그래서 죽을 때 어떻습니까?


편하게 못 죽습니다. 이건 심각한 것입니다. 100년 동안 살았으면, 지혜롭고 많은 걸 알고, 많은 걸 체험함으로써 여유 있게 죽을 줄 알아야 합니다.




마치 가스레인지에 불이 켜져 있으면, 어떻습니까? 주방에 계신 어머니는 놀라지 않지요? 늘 그렇게 해왔으니까.


제가 어렸을 때 우리 동네에 TV가 한 대 들어왔습니다. 그때 할머니가 한 분 계셨는데 90여 살 드셨던 것 같은데 귀신이 나온다고 TV를 못 틀게 했습니다. TV를 켜면 귀신이 나온다고.


이 세상을 살면서 우리는 그런 할머니 같은 생각을 늘 하면서 살아갑니다.


귀신이 아닌데 귀신이라고 하고, 두렵지 않은데 두렵게 세상을 바라보고, 얼마나 많은 착각 속에, 환상 속에서 우리는 그것이 진실이라고 알고 살아갑니다.




1년 동안에 봄에 태어나서 봄이 끝날 무렵에 죽는 존재도 있고, 여름 초기에 태어나서 여름 끝날 무렵에 죽는 존재들이 있고, 가을 초에 태어나서 가을에 죽는 존재들도 있고, 또 초겨울에 태어나서 겨울 끝날 즈음에 죽는 존재들이 있습니다.


이 세상에는 수많은 생명체가 환경과 기후와 조건에 따라서 죽었다가 사라지고, 죽었다가 사라지고를 반복함 합니다.


우리 전등사 불자님들이 전등사에 많이 오셨습니다. 많이 오셨는데 전등사에 수많은 꽃이 피고지고 했습니다. 우리 인간도 그 꽃들이 피고지고 하는 것처럼 또 그렇지요


꽃이 생겨나고 또 꽃이 지고 갈 때 나는 무엇인가? 나의 꽃은 무엇이고 나의 꽃이 지는 것은 무엇인가? 잘 관찰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각 계절마다 태어났다 죽는 것들이 이렇게 다 다르지요 수많은 생사 속에서 살아가는데 진정한 생사를 모른다. 진정한 생사를 알려면 도를 알고 법을 알아야 한다.


제가 어느 날 서울에 가서 공양하는데, 그 식당에 법락무극(法樂無極) 이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법의 즐거움은 끝이 없다.



법락무극(法樂無極) 이라 법을 알면, 법을 누리면 이 세상의 즐거움이 끝이 없다.라는 말입니다


다른 말로 우리 자신이 어떻게 살고 가야 하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생로병사를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알아야 하는가. 우리 인간은 100년 동안 살기 위해 태어났다고 합니다.


그러면은 100년 동안 어떻게 하면 잘살 것 인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100년 보다 더 살려고 하려면 과욕입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이 100년을 못삽니다. 왜 못살까요?


현실에 집착해서 현실에 급급하여서 그렇습니다.


특히 우리나라 사람들은 내일 일할 것도 오늘 당겨서 다해서 쉬려고 합니다.


내일까지 해야 할 일을 하루에 다해버리고 쉬려고 합니다. 거기서 100년 동안 못사는 이유가 나옵니다.


제가 법문 때 자주 말씀드리는 것이 인간하고 동물하고 구분되어야 한다.


동물은 미래를 위해서 계획을 세우지 못합니다. 하루살이 말씀드렸지요? 하루살이는 하루밖에 안 살지요. 왜? 내일을 생각하지 못하기 때문에 내일을 계획하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 인간도 미래를 계획하지 않는 사람은 오래 못삽니다.



제가 어렸을 때 보면 동내에 걸인 아닌 걸인이 있었습니다. 주로 그분들은 관혼상제(冠婚喪祭)에 달인입니다. 귀신같이 압니다. 어디에 초상이 났다 하면 귀신같이 알고 갑니다. 지금은 그런 분들이 없는데 그런 분은 그곳에 옵니다.그런 곳에서 허드렛일을 해주며 그러면서 손바닥 보듯이 압니다. 누가 돌아가셨다. 누가 결혼한다.


그런데 그런 분들은 오래 살 것 같은데 오래 살지 못합니다. 왜 그러느냐 . 생각과 뜻이 그때 맞추어서 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동물은 미래에 대해서 계획을 세우지 못합니다. 우리 인간은 미래에 대해서 계획을 세웁니다.


계획을 세워도 사실 지키기가 굉장히 어렵습니다. 왜 어려울까요? 인간은 다른 동물에 비해서 공감능력이 굉장히 뛰어납니다. 예를 들어서 “평화롭게 살고 싶다“ 그런데 우리나라에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평화로운가요? 평안하지 않지요? 여러분 우리 가정에서 편하고 싶습니다. 그런데 남편의 사업이 망했습니다. 마음이 편한가요? 안 편해지지요. 우리는 그렇게 계획을 잘 세워도 주변 환경에 의해서 편하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불교에서 건업리 있고 공업(工業)이 있습니다. 건 업은 개개인에 해당하는 업 공업(工業)은 같이 쌓은 업 우리 인간의 생각도 태풍과 같습니다. 한번 바람이 생겨서 불기 시작하면은 소멸할 때까지 불지요? 우리 인간의 생각도 같습니다. 한번 볼까요. 우리가 이데올로기에 살면서 자본주의. 민주주의 개인주의가 좋다고 이 세상을 뒤덮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자본주의 병폐 때문에 가난한 사람을 계속 노예로 살아야 하고 부자는 일도 안 하면서 가난한 자들을 두드려 패면서 살아간다는 겁니다. 그러다 공산주의가 나타납니다. 또 공산주의의 말처럼 다 똑같이 일하려 하니 일을 안 합니다. 왜 나만 열심히 하고, 일 열심히 안 하는 사람도 똑같이 받아가니 나라가 발전이 안 됩니다.


또 민족주의가 그렇고 정치에 이런 바람이 불면 정신을 못 차립니다.


지금도 대한민국 곳곳에서 이데올로기 바람이 불고 있습니다. 보수니 진보니 보수가 무엇이 보수인지도 모르고 진보가 무엇이 진보인지 모릅니다. 우리 헌법대로 한다면 진보가 됐든 보수가 됐든 인간 존엄을 해치는 행위는 안 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보수에 치우치고 진보에 치우치다 보며, 인간 존엄을 해치는 행위를 한다는 말입니다. 우리나라의 비계(誹譽)가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 100년을 살아야 하는데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하루에 일을 얼마만큼 해야 에너지가 고갈이 안 되고 얼마만큼 먹어야 에너지가 충전되는 가 이것은 중요한 문제입니다.


사람이 아프면 어떻게 되지요? 한 세대 일단 자기가 아프면은 자기가 아파서 손해. 병원에 돈 갖다 줘서 손해. 주변 분들에게 안 좋은 모습 보여서 손해. 주변 사람들이 돌보아 주는 손해. 그래서 지금 대부분의 어르신인데 어떻게 하면 안 아플까 고민하셔야 합니다.



법락무극(法樂無極)이라.. 법을 알면 즐거움이 끝이 없다. 지금 제가 설법한 것은 법을 설법한 것입니다. 다른 것을 설명한 것이 아닌. 세상을 살아가는데 우리는 이상하게 살아갑니다.




예전 아프리카 원주민들은 옷을 안 입고 살아갔습니다. 또 농사를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러한 것을 미개인이라고 합니다. 농사를 안 지어서 옷을 안 지어서 그런데 아프리카 사람들은 옷을 입으면 힘듭니다. 옷을 입을 필요가 없어서 또 농사를 지을 이유가 없어서 농사를 안 짓는 겁니다. 잠자고 일어나면 과일이 있는데 먹을 게 풍부한데 농사를 지을 이유를 못 느끼는 겁니다. 예를 들어서 땅속에 지렁이가 옷을 안 입고 땅속에 물질만 먹습니다. 그래도 사니까. 그게 행복하니까. 지혜롭게 사는 것이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자기를 관찰하지 않고 사물을 관찰하지 않고 24절기를 관찰하지 않고 지혜가 생기지 않습니다.



에스키모인들에게 털가죽을 왜 입고 사냐고 하면 말이 안 되지요. 추워서 털가죽을 입지 않으면 얼어 죽습니다. 살려고 입는 겁니다.



정말로 이 세상에 최고로 훌륭한 부처님 법을 만났습니다. 이 부처님 법을 만났을 때 정말 열심히 경전을 읽고 실전하고 관찰하고 해야 합니다. 불교를 공부하는데 3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삼 반야(三般若)라고 하는데 문자 반야(文字 般若) 먼저 여러분은 부처님 가르침이 경전에 있습니다. 관조 반야(觀照 般若) 여기에서 이치를 깨닫고 나를 관찰해야 하며, 나를 관찰하고 세상을 관찰해야 합니다. 자연을 관찰해야 합니다. 그래서 실상 반야(實相般若)에 들어야 합니다. 부처님 법 만났을 때 열심히 공부합시다.


이상 법문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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