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지스님 12월 초하루 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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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2,362회 작성일 18-01-28 17:06본문
초하루 법회
오늘은 음력으로 2017년 마지막 달인 12월 초하루입니다.
제가 법문을 할 때 마다 느끼는 것이 있습니다. 법회를 할 때 마다 우리 신도님들은 맨 뒤 쪽부터 앉습니다. 불교에서는 맨 앞쪽에 부처님께서 가시고 그 뒤를 제자들이 따라 갑니다. 법문을 들을 때는 어떨까요? 탱화를 보면 맨 앞쪽에 10대 보살들이 있고 그 뒤로는 부처님의 10대 제자들이 앉고 그 뒤쪽에 아라한들이 앉습니다. 전등사에서 오랫동안 불법을 공부하고 수행하고 기도하신 분들은 앞에 앉으셔야 하는데 맨 뒤쪽에 앉습니다. 세상에는 앞으로 설 때가 있고 뒤로 물러서야 할 때가 있습니다. 뒤로 물러설 때는 덕을 베풀 때입니다. 음덕(陰德)이라고 하죠? 사람들이 모르게 덕을 베푸는 것은 이유가 있습니다. 알게 베풀면 뉴스에 나오고 주위사람들이 칭찬을 합니다. 그러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들뜨게 됩니다. 이런 들뜬 마음이 자신을 헤칩니다. 들뜬 마음을 불교에서는 아만심我慢心이라 합니다. 아만심은 본래 자기 자리를 잃어버리게 합니다. 높은 자리에 올라 힘이 있고 존경을 받을 때 자기 자신의 본성을 들여다보지 못하고 자만에 빠지면 나중에 비참하게 되는 경우를 우리는 많이 봤습니다. 우리가 제일 경계해야 할 것이 바로 아만심입니다. 그래서 덕을 베풀 때는 반드시 음덕(陰德)을 행해야 합니다. 사람들은 보통 덕을 행하면 드러내고 싶어 합니다. 자꾸 알리고 싶어 합니다. 특히 정치인들의 경우 자신이 한 일에 대해 많이 홍보하고 언론을 통해 널리 알리려고 합니다. 정치인들이 자신의 치적을 생색내지만 이 치적들은 세금을 낸 국민들의 음덕이라 할 수 있습니다. 덕을 베풀 때는 반드시 음덕을 행해야 합니다. 대신에 지혜를 닦을 때는 맨 앞에 서서 닦아야 합니다. 숨길 것이 없는 것이 지혜입니다. 드러내면 드러낼수록 빛나는 것이 지혜입니다. 여기 계신 분들은 법문을 듣거나 공부를 할 때는 맨 앞에 나서야 합니다. 열심히 배우고 수행하여 부처님 법을 전해야 합니다. 여기 보살님들 중에는 저보다 훨씬 오래 전부터 부처님 법을 공부한 분들이 많이 계십니다. 이런 분들은 맨 앞쪽으로 오시길 바랍니다.
화엄경 입법계품(入法界品)은 선재동자가 53명의 선지식을 친견하면서 깨달음을 얻는 과정을 그린 내용입니다. 법계(法界)라는 것은 크게 내 밖의 세계를 말하고 밖의 세계는 욕계, 색계, 무색계로 나눕니다. 하지만 일차적으로 내 안의 법계를 알아야 합니다. 내 눈을 예로 들면 내 눈 안에도 수많은 법계가 있습니다. 내 눈에 있는 색(色) 만해도 오색이 있고 12색이 있습니다. 더나가서는 22색, 24색이 있고 더 나가면 무량(無量)한 색이 있습니다. 귀의 세계도 있습니다. 소리의 세계를 보면 그 오랜 시간동안 수 많은 사람들이 노래를 불렀어도 계속해서 새로운 노래가 나오고 있습니다. 냄새의 세계, 맛의 세계, 촉감의 세계도 있습니다. 이런 세계를 아는 방법 중 가장 좋은 방법은 잠잘 때 지금 보고 듣고 말하는 놈이 어디로 살아지는 가를 보는 것입니다. 우리 대웅전에 보면 4마리 원숭이가 있습니다. 지금은 나녀상(裸女像)이라해서 불교적인 이야기는 빠지고 세속적인 이야기 만 남아 있습니다. 역대 선사들은 우리 마음을 원숭이에 비유했습니다. 동물 중에서 잠시도 가만히 있지 않고 가장 부산하게 움직이는 동물이 원숭이입니다. 우리 마음도 마치 원숭이처럼 시시각각 변하기 때문에 선사들은 마음을 원숭이에 비유했습니다. 참선을 하다보면 눈동자가 움직여도 마음이 왔다 갔다 합니다. 1초에 9백 생을 산다고 합니다. 까딱 하는 순간 우리는 9백 생을 왔다 갑니다. 이렇듯 여러분들은 자기 자신이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먼저 알아야 합니다. 기도를 하는 목적도 지혜를 얻기 위함입니다. 스님들은 지혜를 얻도록 부처님께 기도를 하는데 우리 신도님들은 자식 잘 되게 해달라고 기도를 합니다. 목표가 다르니 스님들보다 지혜를 얻기 어려운 것입니다. 치문을 보면 <한 마리의 원숭이가 다섯 개의 창문을 들락날락 한다.>고 했습니다. 5개의 창문은 무엇을 말합니까? 다섯 개의 창문은 눈이라는 창문, 귀라는 창문, 코라는 창문, 입이라는 창문, 촉감이라는 창문을 말합니다. 이 다섯 개의 창문을 원숭이가 왔다 갔다 한다는 것입니다. 잘 때는 모르다가 깨어나면 보고, 듣고, 맡고, 먹고, 느끼는 것입니다. 대웅전 4마리 원숭이를 석가모니 부처님과 약사여래 부처님, 아미타 부처님이 가만히 보고 계십니다. 그것을 일체지자(一切知者)라고 합니다. 부처님은 모든 것을 알고 계시는 것을 말합니다. 전지전능(全知全能) 이 아닌 일체지자입니다. 이 우주는 어디에 매달려 있습니까? 허공(虛空)에 매달려 있습니다. 허공은 어디에서 나왔습니까? 우리의 각(覺)에서 나왔습니다. 허공의 색깔은 무슨 색깔은 입니까? 허공의 색깔은 알 수 없습니다. 천자문을 보면 하늘 천(天), 따지(地), 검을 현(玄), 누루 황(黃)이라고 합니다. 하늘은 워낙 넓고 무궁하여 사람들이 알기에는 검고, 깊고, 오묘하며, 신묘하다는 뜻입니다. 은하계가 모두 허공에 달려있습니다. 이런 허공은 모두 각에서 나왔습니다. 부처님은 어떻게 허공이 탄생했는지, 우주가 어떻게 탄생했는지를 모두 알고 계십니다. 오늘은 음력 12월 초하루입니다. 12월을 납월(臘月)이라 합니다. 옛 조사스님들이 <납월 30일에 소식을 이룬다.>라고 했습니다. 납월 30일은 목숨이 끊어지기 직전을 말합니다. 죽기 전에 읊은 게송을 열반송이라 합니다. 여러분들이 잠잘 때 지금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맛보고, 감촉을 느끼는 5가지 기능이 어디로 가는 지를 잘 살펴야 합니다. 이 다섯 감각을 버리고 또는 무시하고 잠잘 때 그놈이 어디로 가는지를 따라 들어가는 것이 법계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법계에 들어간다는 것은 다른 말로 삼매에 들었다는 말입니다.
법과는 달리 인정은 편협함이 있습니다. 자기 아들딸과 남의 아들딸에 대해 다르게 대합니다. 떡이 있으면 우선 자기 아들딸에게 줍니다. 모두가 배고프면 똑같이 나눠주는 것이 공평한 것인데 실상을 그렇질 못합니다. 편협하지 않고 인정에 휘둘리지 않고 세상의 기준이 되면서 가장 공정한 것을 정법이라 합니다. 정법을 잘 지키는 사람을 수처작주(隨處作主)라고 합니다. 이런 사람은 치우치지 않고 편협하지 않기 때문에 어디에 가도 비방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자식들에 대한 기도도 중요하지만 오늘부터는 자기 공부 잘되고, 지혜를 닦을 수 있도록 기도하시길 바랍니다.
오늘은 음력으로 2017년 마지막 달인 12월 초하루입니다.
제가 법문을 할 때 마다 느끼는 것이 있습니다. 법회를 할 때 마다 우리 신도님들은 맨 뒤 쪽부터 앉습니다. 불교에서는 맨 앞쪽에 부처님께서 가시고 그 뒤를 제자들이 따라 갑니다. 법문을 들을 때는 어떨까요? 탱화를 보면 맨 앞쪽에 10대 보살들이 있고 그 뒤로는 부처님의 10대 제자들이 앉고 그 뒤쪽에 아라한들이 앉습니다. 전등사에서 오랫동안 불법을 공부하고 수행하고 기도하신 분들은 앞에 앉으셔야 하는데 맨 뒤쪽에 앉습니다. 세상에는 앞으로 설 때가 있고 뒤로 물러서야 할 때가 있습니다. 뒤로 물러설 때는 덕을 베풀 때입니다. 음덕(陰德)이라고 하죠? 사람들이 모르게 덕을 베푸는 것은 이유가 있습니다. 알게 베풀면 뉴스에 나오고 주위사람들이 칭찬을 합니다. 그러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들뜨게 됩니다. 이런 들뜬 마음이 자신을 헤칩니다. 들뜬 마음을 불교에서는 아만심我慢心이라 합니다. 아만심은 본래 자기 자리를 잃어버리게 합니다. 높은 자리에 올라 힘이 있고 존경을 받을 때 자기 자신의 본성을 들여다보지 못하고 자만에 빠지면 나중에 비참하게 되는 경우를 우리는 많이 봤습니다. 우리가 제일 경계해야 할 것이 바로 아만심입니다. 그래서 덕을 베풀 때는 반드시 음덕(陰德)을 행해야 합니다. 사람들은 보통 덕을 행하면 드러내고 싶어 합니다. 자꾸 알리고 싶어 합니다. 특히 정치인들의 경우 자신이 한 일에 대해 많이 홍보하고 언론을 통해 널리 알리려고 합니다. 정치인들이 자신의 치적을 생색내지만 이 치적들은 세금을 낸 국민들의 음덕이라 할 수 있습니다. 덕을 베풀 때는 반드시 음덕을 행해야 합니다. 대신에 지혜를 닦을 때는 맨 앞에 서서 닦아야 합니다. 숨길 것이 없는 것이 지혜입니다. 드러내면 드러낼수록 빛나는 것이 지혜입니다. 여기 계신 분들은 법문을 듣거나 공부를 할 때는 맨 앞에 나서야 합니다. 열심히 배우고 수행하여 부처님 법을 전해야 합니다. 여기 보살님들 중에는 저보다 훨씬 오래 전부터 부처님 법을 공부한 분들이 많이 계십니다. 이런 분들은 맨 앞쪽으로 오시길 바랍니다.
화엄경 입법계품(入法界品)은 선재동자가 53명의 선지식을 친견하면서 깨달음을 얻는 과정을 그린 내용입니다. 법계(法界)라는 것은 크게 내 밖의 세계를 말하고 밖의 세계는 욕계, 색계, 무색계로 나눕니다. 하지만 일차적으로 내 안의 법계를 알아야 합니다. 내 눈을 예로 들면 내 눈 안에도 수많은 법계가 있습니다. 내 눈에 있는 색(色) 만해도 오색이 있고 12색이 있습니다. 더나가서는 22색, 24색이 있고 더 나가면 무량(無量)한 색이 있습니다. 귀의 세계도 있습니다. 소리의 세계를 보면 그 오랜 시간동안 수 많은 사람들이 노래를 불렀어도 계속해서 새로운 노래가 나오고 있습니다. 냄새의 세계, 맛의 세계, 촉감의 세계도 있습니다. 이런 세계를 아는 방법 중 가장 좋은 방법은 잠잘 때 지금 보고 듣고 말하는 놈이 어디로 살아지는 가를 보는 것입니다. 우리 대웅전에 보면 4마리 원숭이가 있습니다. 지금은 나녀상(裸女像)이라해서 불교적인 이야기는 빠지고 세속적인 이야기 만 남아 있습니다. 역대 선사들은 우리 마음을 원숭이에 비유했습니다. 동물 중에서 잠시도 가만히 있지 않고 가장 부산하게 움직이는 동물이 원숭이입니다. 우리 마음도 마치 원숭이처럼 시시각각 변하기 때문에 선사들은 마음을 원숭이에 비유했습니다. 참선을 하다보면 눈동자가 움직여도 마음이 왔다 갔다 합니다. 1초에 9백 생을 산다고 합니다. 까딱 하는 순간 우리는 9백 생을 왔다 갑니다. 이렇듯 여러분들은 자기 자신이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먼저 알아야 합니다. 기도를 하는 목적도 지혜를 얻기 위함입니다. 스님들은 지혜를 얻도록 부처님께 기도를 하는데 우리 신도님들은 자식 잘 되게 해달라고 기도를 합니다. 목표가 다르니 스님들보다 지혜를 얻기 어려운 것입니다. 치문을 보면 <한 마리의 원숭이가 다섯 개의 창문을 들락날락 한다.>고 했습니다. 5개의 창문은 무엇을 말합니까? 다섯 개의 창문은 눈이라는 창문, 귀라는 창문, 코라는 창문, 입이라는 창문, 촉감이라는 창문을 말합니다. 이 다섯 개의 창문을 원숭이가 왔다 갔다 한다는 것입니다. 잘 때는 모르다가 깨어나면 보고, 듣고, 맡고, 먹고, 느끼는 것입니다. 대웅전 4마리 원숭이를 석가모니 부처님과 약사여래 부처님, 아미타 부처님이 가만히 보고 계십니다. 그것을 일체지자(一切知者)라고 합니다. 부처님은 모든 것을 알고 계시는 것을 말합니다. 전지전능(全知全能) 이 아닌 일체지자입니다. 이 우주는 어디에 매달려 있습니까? 허공(虛空)에 매달려 있습니다. 허공은 어디에서 나왔습니까? 우리의 각(覺)에서 나왔습니다. 허공의 색깔은 무슨 색깔은 입니까? 허공의 색깔은 알 수 없습니다. 천자문을 보면 하늘 천(天), 따지(地), 검을 현(玄), 누루 황(黃)이라고 합니다. 하늘은 워낙 넓고 무궁하여 사람들이 알기에는 검고, 깊고, 오묘하며, 신묘하다는 뜻입니다. 은하계가 모두 허공에 달려있습니다. 이런 허공은 모두 각에서 나왔습니다. 부처님은 어떻게 허공이 탄생했는지, 우주가 어떻게 탄생했는지를 모두 알고 계십니다. 오늘은 음력 12월 초하루입니다. 12월을 납월(臘月)이라 합니다. 옛 조사스님들이 <납월 30일에 소식을 이룬다.>라고 했습니다. 납월 30일은 목숨이 끊어지기 직전을 말합니다. 죽기 전에 읊은 게송을 열반송이라 합니다. 여러분들이 잠잘 때 지금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맛보고, 감촉을 느끼는 5가지 기능이 어디로 가는 지를 잘 살펴야 합니다. 이 다섯 감각을 버리고 또는 무시하고 잠잘 때 그놈이 어디로 가는지를 따라 들어가는 것이 법계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법계에 들어간다는 것은 다른 말로 삼매에 들었다는 말입니다.
법과는 달리 인정은 편협함이 있습니다. 자기 아들딸과 남의 아들딸에 대해 다르게 대합니다. 떡이 있으면 우선 자기 아들딸에게 줍니다. 모두가 배고프면 똑같이 나눠주는 것이 공평한 것인데 실상을 그렇질 못합니다. 편협하지 않고 인정에 휘둘리지 않고 세상의 기준이 되면서 가장 공정한 것을 정법이라 합니다. 정법을 잘 지키는 사람을 수처작주(隨處作主)라고 합니다. 이런 사람은 치우치지 않고 편협하지 않기 때문에 어디에 가도 비방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자식들에 대한 기도도 중요하지만 오늘부터는 자기 공부 잘되고, 지혜를 닦을 수 있도록 기도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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