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지스님 3월 초하루 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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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2,635회 작성일 18-04-19 14:14본문
오늘 날씨를 보니 봄날이 다 되가는 것 같습니다. 봄이 지나서 여름이 온 것 같습니다.
참 시간이 빠르지요? 우리 불자님들께서 평상시에 기도를 하시든, 또는 수행을 하시든 세상을 살아가는 가는대에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지혜는 생각하며, 노력하고, 배우고 또 배운 것을 기억하여 선악을 구분하고 일을 올바르게 판단해서 현명하게 지내는데 의미가 있습니다.
가끔 저도 고지식한 편인데, 제가 기존에 배웠던 것들에 대해 어떤 스님이 되었던, 거사님들이 되었던 내용을 틀리게 말씀하실 때면 당황할 때가 간혹 있습니다.
금강경에 보면 과거심불가득(過去心不可得),현재심불가득(現在心不可得),미래심불가득(未來心不可得), “과거의 마음도 얻을 수 없고, 현재의 마음도 얻을 수 없으며, 미래의 마음도 얻을 수 없다니, 마음의 점(點)을 어디다 칠 것인가?”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구절을 불교방송에 나오신 어떤 스님께서 “과거에도 부처님이 가득했고, 현재에도 부처님이 가득했고, 미래에도 부처님이 가득하다고 설명 했다고 합니다.
참 좋은 설명이긴 합니다. 그렇지만 이러한 설명을 해서 그것을 믿고 진리로 가는데 도움이 될까 하는 의심이 듭니다.
우리 불교에는 팔만사천법문(八萬四千法門)이 있다고 합니다. 이런 법문들은 중생들이 가지고 있는 잘못된 견해를 올바르게 깨어 주기 위해서 합니다.
우리 도서에 보면 “지지일자 중요지문”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알지(知)자 하나가 모든 문에 들어가는 아주 묘한 문이다“라고 되어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뒤집어서 사람들이 모두 그렇게 이야기 하니까. 어떤 선사께서 반대로 이야기 했습니다
“지지일자 중요지화“라고 했습니다. 이는 “아는 것 한자가 모든 화를 부르더라.”라는 겁니다.
수행자 입장에서는 부처님 가르침대로 잘 따라서 수행을 하면 “지지일자 중도지문“이 됩니다.
그렇기에 잘못된 스승, 사회, 관념, 가치관이 있는 세상에 태어나면 아는 것 자체가 모든 화를 부르는 겁니다.
그래서 불교에서 지혜를 “취모검”(吹毛劍)이라고 합니다.
가을에 새들의 새털이 있죠. 그 시기에 새털이 아주 가늘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다른 말로 하자면 이 세상에서 가장 가는 털을 칼로 벨 수 있을 만큼 잘 드는 칼이 “취모검”(吹毛劍)입니다.
지혜를 그렇게 표현 했습니다. 그럼 다른 말로 지혜의 검이란 무엇이냐
백팔 번뇌 팔만사천 번뇌를 다 잘라서 성불에 이르게 하는 것을 지혜라는 뜻입니다.
올바른 의심해야 올바른 깨달음이 옵니다. 올바르게 의심하지 않는 사람은 절대로 올바른 깨달음이 올 수 가 없습니다.
그것은 부처님의 인과법(因果法)에 어긋이 납니다. 우연히 깨달았다? 세상에 그런 일은 안 일어납니다. 절대로 안 일어납니다. 우연히 깨달을 수 없습니다.
우리 불자님들이 알다시피 부처님은 전생에 팔생업겁을 닦았습니다. 이 세상에 와서 7년여 고행을 하면서 깨달았습니다.
그렇게 훌륭하신 분입니다. 여러분들 아함경이나 어떠한 경전을 읽어봐도 부처님이 어느 누구 한태도 칼에 베이거나 주먹으로 맞거나 그런 험악한 일을 당해본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부처님당시부터 지금까지 내려온 모든 부처님 제자들이 또는 아라한들이 또는 보살들이 부처님만한 복을 얻을 수 있는 사람이 한분도 없다고 그럽니다.
부처님만큼은 복은 받은 분은 없습니다. 기도를 하더라도 올바르게 해야 하며, 수행을 하더라도 올바르게 해야 합니다. 그러면 올바른 것이 무엇입니까? 묻습니다.
올바른 게 무엇인지 잘 몰라요
그래서 공자님 제자가 공자님께 묻습니다. “무엇을 배운다고 합니까?” 라고 묻습니다. 그럼 “어떻게 수행합니까?” 라고 묻는 거와 똑같지요?
그러니까 공자님의 답이 "아는 것을 안다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이 배우는 것이다" 라고 말씀합니다. 정말로 우리 불자님들이 집에서 내가 아는 것이 무엇인가? 모르는 것이 무엇인가? 고민하면 머리가 아프실 겁니다. 그렇지요?
아주 중요한 말입니다. 우리 부처님이 욕계(欲界) · 색계(色界) · 무색계(無色界)에 있는 모든 법들을 분석했지요. 다 분석해서 옳고 그름을 분별해 놓았습니다. 그렇지만 마지막 깨달음은 어때요? 분별하지 않았습니다. 부처님께서 돌아가실 때 한마디도 하지 않으셨다고 합니다. 그러면 불자님들이나 우리 수행자들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욕계에 있는 정과 사, 색계에 있는 정과 사, 다 분별 하고 나서, 어디에 들어야 됩니까? 깨달음에 들어야 됩니다. 다른 말로 열반(涅槃)에 들어야 합니다.
무슨 열반? 무여 열반(無餘涅槃) 입니다. 또는 입멸이 내려야합니다. 아무렇게나 자기 나름대로 답을 내놓는 사람은 새새생생 깨닫지 못합니다.
경전에 입각해서 조사스님에 입각해서 부처님께 입각해서 다른 말로 경전에 의지해서, 조사스님께 의지해서, 부처님께 의지해서 수행하지 않고는 여러분들은 새새생생 닦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오늘 일부로 여러분들이 지금까지 수행한 것을 다시 한 번 점검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염불하지요? 염불은 어떻게 해야 염불이라고 하나요? “나무아미타불” 하는 것이 염불일까요? 염불의 염은 생각 염자입니다. 부처님을 생각하면서 하는 것을 염불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부처님을 생각하는데 부처님의 뒤에 계신 모습을 생각 하면서 해야 할까요?
반드시 오늘부터 염불을 해야겠는데, 곰곰이 생각하고 경전을 찾아보고 스님들께 물어보며 해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제가 이곳에 있으면서 염불을 어떻게 해야 되는지에 대해 물어본 분을 본적이 없습니다.
여러분들 염불을 해서 아미타 정토에 가셔야 하는데 어떻게 해야 가죠? 아미타경을 열심히 읽고 번역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아미타 세계가 어떻게 생겼는지 알아야합니다. 그래서 아미타 세계를 늘 생각 하면서 화장실에 가든, 밥을 먹던, 무엇을 하던 간에 그 생각을 하면서 염불을 계속 잠을 자던 해야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될까요? 자기가 생각하는 아미타 세계에 갈수가 있습니다.
오늘 전등사 어떻게 오셨습니까? 전등사가 여기에 있다는 것을 알고 오셨지요?
아미타 세계가 어디에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리고 염불을 해야 합니다. 그길 가기위해서.
불교는 의심을 하지 않는 종교가 아닙니다. 의심을 하지 않는 사람은 아주 무식한 사람입니다. 불교를 공부하려고 하지 않는 것 이지요. 그래서 내가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갈까? 내가 이 세상을 수행할까? 나는 죽어서 어디에 태어날까? 여러분들이 생각하면서 불교를 배우고, 기도를 하고, 염불을 하고, 가족이 행복하기를 기원해야 올바르게 이루어집니다.
그렇지 않고는 여러분들의 소원이 이루어 지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점치는 분한테 한번쯤은 가보셨나요? 저도 가끔 간혹 보살님들께 물어보면 가고 그런다고 합니다. 그럼 제가 친한 분한테 이렇게 말씀 합니다.
저는 그곳에 가지 말라고 합니다. 그곳에 간다고 해서 일어날 일이 안 일어나며, 안 일어날 일이 일어나고 그러지는 않습니다.
그렇지요? 여러분들 그럼 자기가 수행하고 참회를 해야 합니다. 자기 행동이 바뀌어야, 그리고 자기 생각이 바뀌어야 미래의 내일 일이 바뀌지요?
그 지극한 인과의 이치만 알아도 바뀔 수 있습니다. 인과의 이치를 아는 사람은 진실해집니다.
진실해지지 않는 사람은 자기의 업을 바꿀 수 없습니다.
정말 자기 자신이 진실해져야합니다.
진실해지다보면 어떻습니까? 점치는 분한테 가지 않게 됩니다.
우리가 흔히 첨치는 사람도 자기 죽는 날은 모른다고 그러지요? 부처님은 자기 죽는 날을 아셨을까요. 모르셨을까요?
부처님은 삼 년 전에 당신이 언제 돌아가신다고 말씀 하셨고, 석 달 전에 한번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같이 수행이 부족한 사람은 언제 죽을지 모릅니다.
그렇지만 정말 수행을 잘한 큰 수행자는 자기가 언제 죽을지 압니다. 또 자기가 죽을날을 결정할 수 있습니다.
부처님은 당신이 죽을날을 결정 했죠?
어떻게 결정 했습니까?
부처님 제자들이 말하지요 "부처님 죽으시면 안 됩니다. 부처님께서 가시면 저희는 누구를 의지해서 어떻게 수행해야합니까?"하는 물음에 부처님께서 어떻게 답하십니까? "자기 자신을 등불로 삼고 자신을 의지하라, 진리를 등불로 삼고 진리에 의지하라. 모든 것은 덧없으니, 게으르지 말고 부지런히 정진하라" 이렇게 말씀 합니다
내가 더 있을 필요가 없다고 말합니다. 부처님이 이 세상이 있으나 없으나 똑같다는 겁니다.
그러니 내가 더 이상 살 이유가 없기 때문에 돌아가셨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습니까? 살 이유도 없는데 엄청 살려고 노력하지요? 안 그런가요?
살 이유 없는데 엄청 살려고 합니다. 이 부분을 심각하게 생각해보셔야 합니다.
그렇다고 자살은 안 됩니다. 살아갈 이유가 없다고 자살하면 안 됩니다.
정말로 소중한 이생을 여러분들이 의미 있게 보내자는 겁니다.
지금 이 자리에서 여러분들이 부처님처럼 나도 깨닫기 위해서 어떻게 살아야 되는가.
내 가족을 위해서, 내 남편을 위해서, 내 부인을 위해서, 내 자식들을 위해서, 어떻게 살아야 되는가. 곰곰이 생각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불자님들 일상 생활 속에서도 열심히 수행하시기 바랍니다.
성불하십시오.
참 시간이 빠르지요? 우리 불자님들께서 평상시에 기도를 하시든, 또는 수행을 하시든 세상을 살아가는 가는대에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지혜는 생각하며, 노력하고, 배우고 또 배운 것을 기억하여 선악을 구분하고 일을 올바르게 판단해서 현명하게 지내는데 의미가 있습니다.
가끔 저도 고지식한 편인데, 제가 기존에 배웠던 것들에 대해 어떤 스님이 되었던, 거사님들이 되었던 내용을 틀리게 말씀하실 때면 당황할 때가 간혹 있습니다.
금강경에 보면 과거심불가득(過去心不可得),현재심불가득(現在心不可得),미래심불가득(未來心不可得), “과거의 마음도 얻을 수 없고, 현재의 마음도 얻을 수 없으며, 미래의 마음도 얻을 수 없다니, 마음의 점(點)을 어디다 칠 것인가?”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구절을 불교방송에 나오신 어떤 스님께서 “과거에도 부처님이 가득했고, 현재에도 부처님이 가득했고, 미래에도 부처님이 가득하다고 설명 했다고 합니다.
참 좋은 설명이긴 합니다. 그렇지만 이러한 설명을 해서 그것을 믿고 진리로 가는데 도움이 될까 하는 의심이 듭니다.
우리 불교에는 팔만사천법문(八萬四千法門)이 있다고 합니다. 이런 법문들은 중생들이 가지고 있는 잘못된 견해를 올바르게 깨어 주기 위해서 합니다.
우리 도서에 보면 “지지일자 중요지문”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알지(知)자 하나가 모든 문에 들어가는 아주 묘한 문이다“라고 되어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뒤집어서 사람들이 모두 그렇게 이야기 하니까. 어떤 선사께서 반대로 이야기 했습니다
“지지일자 중요지화“라고 했습니다. 이는 “아는 것 한자가 모든 화를 부르더라.”라는 겁니다.
수행자 입장에서는 부처님 가르침대로 잘 따라서 수행을 하면 “지지일자 중도지문“이 됩니다.
그렇기에 잘못된 스승, 사회, 관념, 가치관이 있는 세상에 태어나면 아는 것 자체가 모든 화를 부르는 겁니다.
그래서 불교에서 지혜를 “취모검”(吹毛劍)이라고 합니다.
가을에 새들의 새털이 있죠. 그 시기에 새털이 아주 가늘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다른 말로 하자면 이 세상에서 가장 가는 털을 칼로 벨 수 있을 만큼 잘 드는 칼이 “취모검”(吹毛劍)입니다.
지혜를 그렇게 표현 했습니다. 그럼 다른 말로 지혜의 검이란 무엇이냐
백팔 번뇌 팔만사천 번뇌를 다 잘라서 성불에 이르게 하는 것을 지혜라는 뜻입니다.
올바른 의심해야 올바른 깨달음이 옵니다. 올바르게 의심하지 않는 사람은 절대로 올바른 깨달음이 올 수 가 없습니다.
그것은 부처님의 인과법(因果法)에 어긋이 납니다. 우연히 깨달았다? 세상에 그런 일은 안 일어납니다. 절대로 안 일어납니다. 우연히 깨달을 수 없습니다.
우리 불자님들이 알다시피 부처님은 전생에 팔생업겁을 닦았습니다. 이 세상에 와서 7년여 고행을 하면서 깨달았습니다.
그렇게 훌륭하신 분입니다. 여러분들 아함경이나 어떠한 경전을 읽어봐도 부처님이 어느 누구 한태도 칼에 베이거나 주먹으로 맞거나 그런 험악한 일을 당해본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부처님당시부터 지금까지 내려온 모든 부처님 제자들이 또는 아라한들이 또는 보살들이 부처님만한 복을 얻을 수 있는 사람이 한분도 없다고 그럽니다.
부처님만큼은 복은 받은 분은 없습니다. 기도를 하더라도 올바르게 해야 하며, 수행을 하더라도 올바르게 해야 합니다. 그러면 올바른 것이 무엇입니까? 묻습니다.
올바른 게 무엇인지 잘 몰라요
그래서 공자님 제자가 공자님께 묻습니다. “무엇을 배운다고 합니까?” 라고 묻습니다. 그럼 “어떻게 수행합니까?” 라고 묻는 거와 똑같지요?
그러니까 공자님의 답이 "아는 것을 안다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이 배우는 것이다" 라고 말씀합니다. 정말로 우리 불자님들이 집에서 내가 아는 것이 무엇인가? 모르는 것이 무엇인가? 고민하면 머리가 아프실 겁니다. 그렇지요?
아주 중요한 말입니다. 우리 부처님이 욕계(欲界) · 색계(色界) · 무색계(無色界)에 있는 모든 법들을 분석했지요. 다 분석해서 옳고 그름을 분별해 놓았습니다. 그렇지만 마지막 깨달음은 어때요? 분별하지 않았습니다. 부처님께서 돌아가실 때 한마디도 하지 않으셨다고 합니다. 그러면 불자님들이나 우리 수행자들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욕계에 있는 정과 사, 색계에 있는 정과 사, 다 분별 하고 나서, 어디에 들어야 됩니까? 깨달음에 들어야 됩니다. 다른 말로 열반(涅槃)에 들어야 합니다.
무슨 열반? 무여 열반(無餘涅槃) 입니다. 또는 입멸이 내려야합니다. 아무렇게나 자기 나름대로 답을 내놓는 사람은 새새생생 깨닫지 못합니다.
경전에 입각해서 조사스님에 입각해서 부처님께 입각해서 다른 말로 경전에 의지해서, 조사스님께 의지해서, 부처님께 의지해서 수행하지 않고는 여러분들은 새새생생 닦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오늘 일부로 여러분들이 지금까지 수행한 것을 다시 한 번 점검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염불하지요? 염불은 어떻게 해야 염불이라고 하나요? “나무아미타불” 하는 것이 염불일까요? 염불의 염은 생각 염자입니다. 부처님을 생각하면서 하는 것을 염불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부처님을 생각하는데 부처님의 뒤에 계신 모습을 생각 하면서 해야 할까요?
반드시 오늘부터 염불을 해야겠는데, 곰곰이 생각하고 경전을 찾아보고 스님들께 물어보며 해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제가 이곳에 있으면서 염불을 어떻게 해야 되는지에 대해 물어본 분을 본적이 없습니다.
여러분들 염불을 해서 아미타 정토에 가셔야 하는데 어떻게 해야 가죠? 아미타경을 열심히 읽고 번역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아미타 세계가 어떻게 생겼는지 알아야합니다. 그래서 아미타 세계를 늘 생각 하면서 화장실에 가든, 밥을 먹던, 무엇을 하던 간에 그 생각을 하면서 염불을 계속 잠을 자던 해야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될까요? 자기가 생각하는 아미타 세계에 갈수가 있습니다.
오늘 전등사 어떻게 오셨습니까? 전등사가 여기에 있다는 것을 알고 오셨지요?
아미타 세계가 어디에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리고 염불을 해야 합니다. 그길 가기위해서.
불교는 의심을 하지 않는 종교가 아닙니다. 의심을 하지 않는 사람은 아주 무식한 사람입니다. 불교를 공부하려고 하지 않는 것 이지요. 그래서 내가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갈까? 내가 이 세상을 수행할까? 나는 죽어서 어디에 태어날까? 여러분들이 생각하면서 불교를 배우고, 기도를 하고, 염불을 하고, 가족이 행복하기를 기원해야 올바르게 이루어집니다.
그렇지 않고는 여러분들의 소원이 이루어 지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점치는 분한테 한번쯤은 가보셨나요? 저도 가끔 간혹 보살님들께 물어보면 가고 그런다고 합니다. 그럼 제가 친한 분한테 이렇게 말씀 합니다.
저는 그곳에 가지 말라고 합니다. 그곳에 간다고 해서 일어날 일이 안 일어나며, 안 일어날 일이 일어나고 그러지는 않습니다.
그렇지요? 여러분들 그럼 자기가 수행하고 참회를 해야 합니다. 자기 행동이 바뀌어야, 그리고 자기 생각이 바뀌어야 미래의 내일 일이 바뀌지요?
그 지극한 인과의 이치만 알아도 바뀔 수 있습니다. 인과의 이치를 아는 사람은 진실해집니다.
진실해지지 않는 사람은 자기의 업을 바꿀 수 없습니다.
정말 자기 자신이 진실해져야합니다.
진실해지다보면 어떻습니까? 점치는 분한테 가지 않게 됩니다.
우리가 흔히 첨치는 사람도 자기 죽는 날은 모른다고 그러지요? 부처님은 자기 죽는 날을 아셨을까요. 모르셨을까요?
부처님은 삼 년 전에 당신이 언제 돌아가신다고 말씀 하셨고, 석 달 전에 한번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같이 수행이 부족한 사람은 언제 죽을지 모릅니다.
그렇지만 정말 수행을 잘한 큰 수행자는 자기가 언제 죽을지 압니다. 또 자기가 죽을날을 결정할 수 있습니다.
부처님은 당신이 죽을날을 결정 했죠?
어떻게 결정 했습니까?
부처님 제자들이 말하지요 "부처님 죽으시면 안 됩니다. 부처님께서 가시면 저희는 누구를 의지해서 어떻게 수행해야합니까?"하는 물음에 부처님께서 어떻게 답하십니까? "자기 자신을 등불로 삼고 자신을 의지하라, 진리를 등불로 삼고 진리에 의지하라. 모든 것은 덧없으니, 게으르지 말고 부지런히 정진하라" 이렇게 말씀 합니다
내가 더 있을 필요가 없다고 말합니다. 부처님이 이 세상이 있으나 없으나 똑같다는 겁니다.
그러니 내가 더 이상 살 이유가 없기 때문에 돌아가셨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습니까? 살 이유도 없는데 엄청 살려고 노력하지요? 안 그런가요?
살 이유 없는데 엄청 살려고 합니다. 이 부분을 심각하게 생각해보셔야 합니다.
그렇다고 자살은 안 됩니다. 살아갈 이유가 없다고 자살하면 안 됩니다.
정말로 소중한 이생을 여러분들이 의미 있게 보내자는 겁니다.
지금 이 자리에서 여러분들이 부처님처럼 나도 깨닫기 위해서 어떻게 살아야 되는가.
내 가족을 위해서, 내 남편을 위해서, 내 부인을 위해서, 내 자식들을 위해서, 어떻게 살아야 되는가. 곰곰이 생각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불자님들 일상 생활 속에서도 열심히 수행하시기 바랍니다.
성불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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