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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지스님 7월 초하루 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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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2,851회 작성일 18-08-15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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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살아가는 동안 어떻게 하면 괴로움을 벗어날 것인가? 늘 생각 합니다.
그리고 이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방법도 천 가지, 만 가지가 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돈을 벌어서 벗어나는 방법, 권력을 얻어서 벗어나려는 방법, 아부를 해서 벗어나는 방법 등 여러 가지의 방법이 있습니다.

불교는 이 걱정과 고민. 이 근본적인 괴로움에서 어떻게 하면 벗어날 것인가? 그 방법은 자기 자신을 관찰함으로써 벗어 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부처님이 전지전능해서 또는 부처님을 믿으면 여러분의 모든 괴로움을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 부처님의 법에 의지하여 자기 자신을 믿고 수행정진 할 때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것 입니다.

그렇게 자기 자신을 관찰해서 공부한 사람을 어떻게 표현하느냐.
반야심경에서 있는 "관자재보살이 행심반야바라밀다를 행할 때 오온을 공한 것을 비추어 본다."라고 합니다.
그 비추어본 빛이 바로 우리의 주인공이며 불성입니다.

이 세상에 모든 존재를 만들어낸 주인공이라는 말입니다.
원각경에 보면 각 무변허공 각소현발(無邊虛空 覺所顯發)이다는 말이 있습니다.
“허공은 마음이 만들어 낸 것이다. “

허공이 각(覺)에서 나왔다는 뜻인데 『원각경』의 구절은 “허공이 대각(大覺) 가운데서 생겨남이 마치 바다에 한 거품이 생긴 것과 같다(空生大覺中 如海一漚.發).”는 『능엄경』의 말과 같은 뜻입니다.

무변허공(無邊虛空)이 어디서 왔느냐? 각(覺)에서 의해서 나왔다.
그 각(覺)이 오온을 비추어보는 각입니다. 다른 곳에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그 주인공과 불성을 찾아야 하는데, 세월마다. 사람마다. 경전마다 각기 다르다는 말입니다. 단지. 다르게 써 놓았기 때문에 그러는데 다르게 읽는 것도, 보이는 것도 아니니, 그 시대에 따라 다르게 써 놓았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입니다.
중국의 백장 선사께서 한 법문내용 중 이런 문장이 있습니다. “영광독요(靈光獨耀) 형탈근진(靈光獨耀) 체로진상(靈光獨耀) 불구문자(靈光獨耀) 심성무염(心性無染) 본자원성(心性無染) 단리망연(心性無染) 즉여여불(心性無染)”이라

이 뜻은 "신령스러운 빛이 홀로 빛이 난다"라는 문장입니다.
그런데 그것은 근진(根塵)을 벗어났다. 근(根)이라는 것이 무엇일까요? 눈ㆍ귀ㆍ코ㆍ혀ㆍ몸의 5근(根) 또는 뜻을 더하여 6근(根)과, 빛ㆍ소리ㆍ냄새ㆍ맛ㆍ촉감의 5진(塵) 또는 법진을 더하여 6진과를 말합니다.

이에 6근을 벗어났다. 다른 말로는 육신과 번뇌를 벗어나 있다. 진(塵)은 6근에 해당되는 번뇌입니다. 번뇌를 벗어나다.

진(塵)은 예를 들어 눈으로 세상을 보지요? 우리는 세상을 보는데 많은 분별작용을 합니다. 그 분별작용이 어떻게 하는 것일까요? 자기 자신이 이 세상에 존재하기 위해 분별작용을 한다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는 우리 범부(凡夫)들은 자기가 이 세상에 살기 위해 분별작용을 한다. 탐진치(貪瞋痴)로 이 세상을 분별한다는 말입니다. 그것이 진(塵)에 해당합니다.

그것이 영광에 통로에 형탈근진(逈脫根塵)하여 채워진 것인데, 그런 근진(根塵)을 벗어난 자체는 항상 참된 모습으로 있어서 문자에 집착해 있지 않는다. 문자에 쓰여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문자가 문자를 비추어 볼 수 있나요? 비추어 볼 수 없습니다. 그럼 문자는 무엇으로 비추어 봅니까? 영광이 동로한 내 불성(佛性) 자성(自性) 다른 말로 무변허공(無邊虛空)이 각소현발(覺所顯發) 허공을 만들어 낸 것이 비추어 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진성은 물들지 않습니다. 이 세상 어디에도 물들지 않는다는 겁니다.
허공이 진성을 물들일 수 있을까요? 진성을 물들일 수 없습니다.
그래서 본자원성(本自圓成)이라. 본래 스스로 완성되어 있더라 그런 말입니다.
다만 망연 잘못된 생각. 잘못 만들어진 우리의 번뇌 탐진치(貪瞋痴)만 여의면은 우리는 본래 부처님과 똑같더라 그런 말입니다.
이런 말들이 아함경(阿含經)에 보면 천상천하 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
"하늘 위와 하늘 아래 오직 나만 홀로 존귀하다" 존귀하다고 하니까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존귀함이 아닙니다.
예를 들어 이순신 장군을 존귀하다 그런 뜻이 아닙니다.
여기에서 존귀하다는 것은 무변허공(無邊虛空)을 만들어낸 각(覺) 영광을 이야기 합니다.
그것이 훌륭하다는 것입니다. 부처님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에게도 있다는 것입니다.
다만. 만연 잘못된 인연만 허망한 인연만 떠나버리면 바로 진성이 드러난다는 그런 말입니다.
천상천하 유아독존 그 영광이 부처님은 어떻습니까?
중생의 생로병사를 제도하겠다고 아함경에서 말씀하셨습니다.
이렇게 모든 경전에서 모든 불자들의 목표는 무엇이냐? 허공을 만들어낸 그 각을 새새 생생 찾아서 그 본성을 그 진성을 그 영광을 찾기 위해서 노력해야 한다.

이 하나만 찾아내면 모든 괴로움을 알 수 있다고 합니다. 이해 할 수 있고, 왜 괴로운 줄 알며, 그 괴로움을 알면 괴로움이 아니지요? 우리는 왜 괴로운 지 모르기 때문에 괴롭습니다. 괴로운 줄 알면서 괴로운 사람이 있을까요? 없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탐진치(貪瞋痴) 무명(無明)에 찌들어서 살기 때문에 괴로운 것 입니다. 시집을 가고 장가를 가지 않았다면 괴롭지 않았을 텐데. 그런다고 안 괴로울 까요? 안 가신 분은 안가는 대로 또 괴롭지요?
소크라테스가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결혼은 가도 후회하고 안가도 후회하니 이왕이면 가보고 후회하라" 그렇게 말했습니다.
남들이 다하는 것 해보고 후회하는 게 낮지 않겠습니까?

여러분들이 어떤 목표를 향해서 예를 들어 오늘 전등사에 오는 일이 괴롭다고 생각 했으면 안 오셨을까요? 괴롭지 않다고 생각해서 오신 것이라고 봅니다.

내가 지금 늙어서 죽는 일이 괴롭다고 생각 하면 어쩔 수 없이 괴로운 데, 늙어서 죽는 일이 어떻게 보면 기쁜 일 일 수 있습니다. 밥도 맛이 없고 몸도 잘 못 움직이고 귀도 안 들리고 눈도 안보여 이러한 고통을 벗어나 새로운 생명으로 탄생하게 해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기뻐하는 마음으로 또 영광이 종루 한 것을 찾아서 기뻐하는 마음으로 오늘 백중 5재에 임해서 우리 조상들을 우리 가족들을 또 우리 수자령 영가들을 천도 하였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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