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지스님 12월 초하루 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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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전등사 댓글 0건 조회 1,898회 작성일 19-12-27 15:30본문
올해는 날씨가 그렇게 춥지가 않은 것 같습니다. 오늘이 바로 섣달 초하루입니다. 절집에서는 마지막 날을 납월 말일이라고 합니다. 다른 말로는 스님들이 죽음을 얼마 안두고 쓰는 말이기도 합니다. 납월 말일 소식이 왔을 때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질문을 많이 하게 됩니다. 여기 계신 불자님들도 벌써 나이들을 많이 드셔서 이제 앞으로 살아갈 날 보다는 죽을 날이 가깝습니다. 불교 말에 ‘줄어드는 물속에 물고기와 같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가뭄에 물이 말라가면 물고기는 어떻게 합니까? 한곳으로 모이게 됩니다. 그 이후에 물이 완전히 마르면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죽게 됩니다. 우리도 한발자국씩 죽음을 향해 가고 있습니다. 점점 쭈글쭈글해지면서 죽음 앞으로 한 발씩 가고 있습니다. 우리가 흔히들 번뇌를 버려라, 내려놔라 많이 하는데, 사실 번뇌는 우리가 어디서 주워 오는 것이 아닙니다. 어디서 우리가 갑자기 번뇌를 가져 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내다 버릴 수도 없는 것입니다. 원인과 결과를 명확하게 알면 완전한 비움이 되고 또 버림이 되는 것이지 내 안에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면서 어떻게 그것을 버리고 비우고 하겠습니까? 어디에 있는지를 모르는데 우리가 어떻게 비우고 하겠습니까?
어디서 와서 어디로 사라지는가에 대해 고민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살아갈 날은 점점 줄어드는데 계속 살 생각만 하면 힘들어집니다. 우리는 어떻게 하면 잘살 것인가 보다 잘 죽는 방법을 생각해야 합니다. 어떻게 하면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잘 죽을 것인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앞으로 잘사는 것만 생각하기보다 행복한 죽음을 맞이할 준비를 하셔야 된다는 말입니다. 오늘은 섣달 초하루입니다. 벌써 올해도 한달밖에는 남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모자란 것을 자꾸 채우려고 하지 말고 모자란 대로 어떻게 잘 갈무리를 할 것인가를 생각해야합니다.
중국 구화산에 지장보살님이 계시는데, 이 구화산은 중국 4대 불교 성지 중에 하나입니다. 약 1000년 넘게 이곳은 지장보살의 성지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 이유는 바로 한국 사람인 김교각스님이 계십니다. 김교각스님은 신라시대 왕자로 태어나셨고 24살 되던 해에 출가를 하셨습니다. 스님께서는 아주 깊고 무인지경(無人之境)인 곳만 골라서 수행을 하셨고 당시 구화산을 관리하던 관리에게 수행터로 가사 한 장 펼칠 땅을 청하자 흔쾌히 허락을 하였습니다. 그러자 가사가 구화산의 아홉 봉우리를 모두 덮었다고 전해집니다. 이후로 스님은 쉼 없이 수행에 매진하였고 99세에 결가부좌를 한 상태로 입적하셨습니다. 돌아가신지 3년이 지나도 얼굴에 생기가 돌았으며 손도 부드러웠고 살아서 소리가 들린다 하여 중국 사람들은 김지장(金地藏)보살이라고 부르며 공양, 경배를 드렸습니다. 김교각스님 밑에서 수행을 하던 동자승이 있었는데 동자승이 하산을 할 때 스님이 지은 시를 하나 소개 해드리겠습니다.
空門寂寞汝思家(공문적막여사가) 禮別雲房下九華(예별운방하구화)
愛向竹欄騎竹馬(애향죽란기죽마) 懶於金地聚金沙(나어금지취금사)
절이 심심하여 집 생각 하더니 절 방을 하직하고 구화산을 떠나는구나
난간에 기대어 죽마 타는 것을 좋아했지만 수행은 게을리 하는구나
添甁澗底休撈月(첨병간저휴로월) 亨茗歐中罷弄花(형명구중파농화)
好去不須頻下淚(호거불수빈하루) 老僧相伴有煙霞(노승상반유연하)
항아리에 물을 길어 달을 부르는 일도 끝이나고 차를 달여 사발에 꽃 피우는 일도 끝이구나
잘 가거라, 자꾸 울지 말고 이 노승에겐 같이 지낼 안개와 노을이 있단다.
떠나는 동자승을 달래주는 김교각스님의 마음도 느껴지지만 마지막 구절을 우리는 생각을 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스님은 동자승을 떠나보내고 안개와 노을을 벗 삼아 적막을 즐기며 수행에 매진하셨습니다. 집에 돌아가셔서 납월 31일 누가 나하고 짝일 것인가 무엇이 나와 짝인 것인가를 곰곰이 생각해보시길 바랍니다. 이만 마치겠습니다. 성불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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